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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2일 수요일

실신 부정맥 미주신경

심장박동 느려도 부정맥… 어지럽고 실신할 수도

흔히 부정맥 하면 가슴이 빨리 뛰는 것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피로를 느끼거나 실신하는 것도 부정맥 증상일 수 있다. 부정맥은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뛰는 질환이다. 따라서 심장이 빨리 뛰느냐 느리게 뛰느냐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고대구로병원 순환기내과 임홍의 교수(대한부정맥학회 부총무이사)는 "심장박동 차이에 따라 증상이 다른 부정맥은 각각 위험도가 다르고 심할 경우 돌연사까지 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정맥의 다양한 증상
◇부정맥이 실신·흉통으로도 나타나

보통 심장은 1분에 60~100회를 뛴다. 이보다 느리면 '서맥(1분 50회 이하)' 빠르면 '빈맥(1분 100회 이상)', 빈맥과 서맥이 반복되면 '혼합형 부정맥(빈맥서맥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잠깐 맥박이 연속으로 뛰는 '조기박동'도 부정맥이다. 부정맥의 유형에 따라 증상이 다르다. 심장이 느리게 뛰는 서맥은 전신피로감, 호흡곤란, 어지러움이 발생한다. 실신하는 경우도 있다. 심장이 느리게 뛰면 전신에 혈액과 산소를 원활하게 보내지 못한다. 그러면 몸안 곳곳에 산소 공급이 부족해져 몸은 피로해지고, 어지러움을 느끼게 된다. 임홍의 교수는 "혈액이 뇌에 제때 공급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실신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심장이 빨리 뛰는 빈맥은 심장이 방망이질 하듯이 두근거리며 가슴이 아픈 심계항진이 발생한다. 속이 메슥거릴 수도 있다. 심장수축 기능 이상으로 심장이 과도하게 혈액을 뿜어내면서 흉통이 생기는 것이다. 서맥과 빈맥이 반복되는 혼합형부정맥은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는 심계항진과 어지러움·실신 등 서맥과 빈맥의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 조기박동은 심장이 울컥거리는 느낌이 든다. 성바오로병원 순환기내과 노태호 교수는 "부정맥을 의심해 병원을 찾는 환자의 10명 중 7명은 조기박동이지만 조기박동은 일시적이고 위험하지 않아서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즉시 가까운 병원에서 심전도 검사해야

만약 부정맥 증상이 의심되면 즉시 가장 가까운 내과 병의원을 찾아 심전도를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 부정맥 증상은 1시간 이내에 사라지기 때문에 증상이 발생했을 때 심전도를 측정해야 진단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증상이 생겼다 사라지는 부정맥 특성상 최근에는 24~48시간 심전도를 측정하는 검사법부터 일주일간 심전도를 측정하는 '이벤트기록기', 심장 인근 피부에 이식해 2~3년간 심전도를 측정하는 '이식형사건기록기' 등이 쓰이고 있다. 임홍의 교수는 "부정맥은 돌연사의 가장 큰 위험"이라며 "부정맥 증상이 보일 때 심전도 검사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생리통 치료와 임신 가능성

"생리통, 몸이 힘들다는 신호...치료하며 임신도 자연스레 되는 경우 많아"

● BBS 부산 ‘부산경남 라디오830(3월21일)’
    (부산FM 89.9Mh 창원FM 89.5Mh/진주 FM 88.1 Mh 08:30~09:00)
● 코너명 : 주간섹션 한의학상담
● 진행 : 박영록 BBS 부산 보도부장
● 출연 : 최지은 쉬지한의원장(부산시 한의사회 지식정보위원)

(앵커멘트) 다음은 주간섹션 순서입니다. 매주 화요일 이 시간에는 부산시한의사협회에서 한의학 상담을 해주고 계시는데요. 오늘은 부산시한의사협회 지식정보위원을 맡고 계시고 부산에서 쉬즈 한의원을 운영하고 계시는 최지은 원장님과 함께 생리통치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금, 최지은 원장님 전화 연결 돼 있습니다. 최지은 원장님 안녕하세요?
  

최지은 쉬즈한의원장

질문1) 오늘 주제가 생리통에 관련된 것이네요. 생리통은 여성이라면 모두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요.어떤 질환인가요?

-생리를 하는 여성 중 50% 이상이 생리통으로 고통을 느끼시는데요. 생리통은 생리기간, 또는 생리하기 몇시간 전부터 , 대략 2-3일정도 주로 하복부 위주로 나타나는 통증을 말합니다. 이 통증은 칼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많고. 복부가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두통이나 울렁거림의 소화기 증상, 설사, 허리통증, 치골 앞쪽 통증, 외음부 통증, 다리저림까지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감정적으로도 우울해 질수 있으며, 전반적인 몸살 기운을 느끼시는 분도 있으십니다.

질문2)생리통은 일반적으로는 복통으로만 알고 있는데요. 다양하게 나타나는군요. 그럼 생리통은 왜 생기는건가요?

-생리란 임신되지 않았을 때 자궁내막을 계속 유지할 필요성이 없어져 체외로 배출되게 되는데. 그것이 생리혈이 되는것이며 그 과정중에 생리통이 생기게 됩니다. 배란이후 자궁내막 내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이 증가되는데 이 프로스타 글란딘이 과하게 분비되는 경우 자궁수축이 과하게 되어 통증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생리통은 2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원발성 생리통과 속발성 생리통인데요..

원발성 생리통은 골반내,자궁내 기질적인 병변이 없는 경우 나타나는 생리통이구요..검사상 아무이상이 없다라고 하며. 주로 초경이후부터 꾸준히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발성 생리통의 강도는 진통제 몇 개 정도로 견디실수 있는 정도지만 진통제 개수가 점점 늘어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속발성 생리통이 있는데요. 이 경우는 자궁내 병변을 동반해서 나타나는 통증이고. 그 통증은 정말 극심하여 일반적인 진통제로도 통증제어가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 응급실 실려갔었다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리 시작전부터 통증이 심하여 공포감으로 우선 진통제를 드시고 생리 기간을 맞게 됩니다. 

생리가 끝나고 나서도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자궁내막증, 자궁내막유착증 , 자궁내 피임장치, 자궁선근증, 자궁근종, 골반염, 자궁선천성 기형 등을 가지고 있는 경우의 생리통이라 원발성 생리 진통과는 강도가 다릅니다.

질문3)통증의 강도도 어떤 생리통이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군요. 생리통에는 진통제라는 광고도 많은 만큼 치료에 있어 당연히 진통제가 우선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생리통의 일반적인 치료는 어떻게 하나요?

-생리통하면 가장 먼저 진통제를 떠올리게 됩니다. 가장 많이들 복용하시는 진통제는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 이구요. 내성이 없다고 알려져 있고 환자들이 편하게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이 진통제 개통은 원발성 생리통에는 잘 듣는 편입니다. 

그밖에 진통제 뿐만 아니라. 양방에서는 피임약, 미레나 등의 피임으로 호르몬 조절하는 치료를 하며, 자궁병변으로 생리통이 심해진 경우는 그 병변들을 제거하는 시술 등을 하게 됩니다. 심한경우는 자궁적출의 경우도 있습니다.

한의원에서도 원발성 생리통은 침치료, 뜸치료, 간단한 과립제,환약 등으로도 치료가 잘 되는 편입니다.주로 바쁜 젊은 여성들이고, 간편성을 보았을 때 진통제를 주로 선호하셔서 적극적으로 한방 치료를 잘 안 하게 됩니다. 보통 배란이 시작되면 한의원으로 내원 치료를 권해드립니다.

그러나 속발성 생리통은 치료를 좀더 집중적으로 해야 될 필요가 있는데요.. 수개월의 한약치료로 자궁주변부의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며, 역류된 생리혈들이 유착되지 않도록 치료를 해주어야 합니다.

한의학 치료는 자궁내막증 , 자궁선근증 , 자궁근종 등으로 오는 생리통은 인위적으로 호르몬 제어나 수술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자궁과 난소의 면역환역을 정상화 하는데 치료 목표를 두게 됩니다. 또한 임신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도 생리통이 있으시다면 이부분 고려해서 함께 치료를 하게 됩니다.

질문4)생리통 꼭 치료를 해야 하나요? 간단한 진통제로도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것 같은데요?

-진통제 몇 알로 생리통을 이겨낼 수 있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가령 진통제를 10알, 20알 이상 드셔야 하고, 진통제 개수가 점점 늘어난다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거죠.
이런 경우는 본인들도 뭔가 잘못 되었다라고 불안해 하시고. 산부인과 가서 검진을 받는 경우도 있으나, 설사 자궁병변을 발견하였다 해도 병변을 제거하는 시술이거나, 강도 높은 진통제 그리고 진통제로 제어가 안되면, 피임약으로 호르몬을 조절하거나 가장 심한 경우는 자궁적출 까지도 고려를 해야 하니까요...이런 경우는 미혼여성인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미혼 여성들은 앞으로의 결혼과 더불어 임신계획도 세우게 되는데, 그런 부분에서 자궁과 난소기능 그리고 자궁병변을 무조건 수술하거나 장기적으로 호르몬 투여는 염려스러울수 있습니다. 

장기적인 진통제 복용과 호르몬 치료는 최근 논문에 따르면 배란기능을 억제하고 난포의 파열을 막아 난포낭종의 발병률을 높인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난임 불임으로 또한 마음 고생을 하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고 난임의 원인 중 하나가 배란장애가 많으니 걱정이 되는 부분입니다.

질문5)임신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월경이 규칙적이어야 한다라고만 생각하는데요. 단순히 생리를 한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되는 것이군요. 월경통이 심한 경우는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안 가는데 어느정도 이신가요?

-앞서 말씀은 드렸지만. 자궁내막증, 자궁선근증, 자궁근종,자구유착증 등을 가지신 분들이 생리통이 심합니다.

작년 부산시와 한의사협회가 주관하는 부산한방난임사업 참여자의 예를 들어 설명을 드리면
생리통이 극심한 두분이 계셨습니다. 한분은 자궁내막증과 자궁내막유착증을 가지고 계셨고 극심한 생리통이 있으셨는데 생리하기 3-4일전부터 통증이 서서히 오기 시작하면서. 두려움으로 생리를 맞게 되며, 생리시에는 고농도의 진통제를 드심에도 일상적인 생활이 전혀 안되셔서요. 외출이 안 되시고, 하복통 요통, 외음부, 항문까지 빠지는 느낌, 그리고 몸살 기운처럼 느끼는 전신 통증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생리가 끝난 이후에도 1주일 정도 가벼운 몸살기운과 외음부와 항문이 빠지는 느낌의 통증이 지속되셨던 분이구요. 생리통으로 인해 한달에 15일이상은 정상적인 생활이 안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비록 임신은 안되셨지만. 4달 간의 한약치료가 끝나갈 쯤에는 생리통이 진통제로 제어가 될 정도까지는 되셨구요. 진통제 개수도 줄어들었습니다.

또, 한분은 자궁선근증과 자궁근종이 있으셨고.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그리고 앞서 인공수정을 2회 하셨었는데 그 이후 생리통이 극심해졌던 분이셨습니다. 이분은 항상 생리하실때마다 응급실로 한밤중에 수없이 다니셨던 분이었구요. 한약치료와 침뜸 치료가 점점 진행될수록 생리통이 많이 호전되셨고 응급실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집에서 진통제 3-4알로 안정을 취하면 힘들지 않게 되어 너무 좋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치료가 끝나갈 쯤에는 임신성공도 하셨지만. 안타깝게 화학적 유산을 하셨습니다. 결혼 5년만에 처음 임신이 되셔서 많이 기뻐하셨고. 본인도 임신이 될수 있는 몸이라는 것을 확인할수 있는 기회여서, 마음이 서운하지만 다시 또 준비를 하시겠다라고 하시며 마무리가 되셨던 환자분이었습니다. 

이렇게 두분의 예에서 알수 있듯이 생리통이 극심한경우는 일상생활 자체가 힘들게 되며, 주변에서도 참 지켜보는 가족들도 안타깝게 만듭니다. 

질문6)생리통 완화를 위해서 일상생활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복부에 핫팩을 한다던지. 적절한 체중을 유지한다던지.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은 기본이 되겠구요. 오늘은 환경호르몬 관점에서 말씀을 더 드려볼까 합니다.

최근 몇 주전 SBS티비에서도 “바디버든 자궁의 경고” 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습니다.
바디버든은 사람의 체내에 축적되는 유해물질이라는 뜻인데요. 쉽게 생각해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환경호르몬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환경호르몬들이 여성자궁의 질환등을 악화시키고 생리통을 예전보다 늘어난 요인으로 바디버든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여기서 4주간 환경호르몬 회피 실험으로 생리통에 대해 많은 호전을 보여줬습니다. 따라서 생리통을 환경호르몬과 연관성부분만 보고 말씀을 드리면요.

환경호르몬을 줄이는 생활습관이 먼저인데요. 이부분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과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력이 동반되어야 개선이 될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캔종류에 담겨있는 음식류, 1회용품인 플라스틱등을 줄여주시고. 유리나 스테인레스제품으로 교체하는 게 좋습니다.

또, 즉석식품 안먹기, 액체형 비누보다는 고체형 비누사용하기, 세정제 합성세지 줄이기, 화장품도 최소한으로 쓰기가 있겠고요.

식이섬유나 건강한 기름인 올리브유 들기름유 등은 환경호르몬을 배출해 줄수 있다고 하니 드셔주시는게 좋겠습니다. 또한 생리통은 스트레스에도 민감하니 스트레스완화에 신경써주시고, 이는 스스로가 좋아하는 운동, 취미활동을 통해 꼭 해소 할수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질문7)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성의 생리(월경)는 여성건강의 척도입니다. 여성의 생리상태는 향후 임신과 출산, 그리고 자궁질환까지 모두가 관련성이 깊습니다. 생리통은 현재 내가 힘들다라고 내몸과 자궁이 보내는 SOS신호입니다.

평소 생리통이 심하지 않았는데 점점 심해지거나, 출산이후 생리통이 점점 심해지면 자궁내 병변을 의심해볼수 있으니 초음파 검사등의 주기적인 진료를 받아보시는 것을 권해드리구요

특히나 임신을 준비하시는 분들중에 생리통이 심하신분들은 생리통을 치료하면서 임신이 자연스레 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부산시에서 한방난임사업을 올해도 계속 시행하고 있으니. 부산 거주하시는 분들은 난임치료와 생리통 치료를 동시에 해보시는 기회가 될수 있겠습니다.

(앵커멘트)오늘은 생리통을 치료와 난임 관계 대해 부산시한의사회 지식정보위원이자 쉬즈한의원 최지은 원장님을 통해 들어보았습니다. 오늘 유익한 내용 감사드리고 출연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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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1일 화요일

암이 사라졌어요

[건강] "암이 사라졌어요" 누구나 나이가 들면 건강에 관심이 생긴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운동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중 으뜸을 고르라면 단연 잘 먹는 것이다. 하지만 먹을 것이 넘치는 요즘 사람들은 오히려 먹는 것 때문에 건강을 잃는다. 시대마다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먹는 것'이이다. 방송에서 건강에 이로운 음식을 다루기 시작한 건 약 20년 전이다. 당시에는 주로 한의사들이 방송에 출연했는데 어떤 음식은 어떤 질병에 좋고 어떤 음식은 어떤 체질에 좋다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후 한의사뿐만 아니라 일반 의사들이 방송에 나와 음식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떤 음식에는 어떤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어떤 질병에 좋다는 식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음식을 잘 먹는 것이 몸에 이롭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음식을 안 먹으면 건강이 나빠지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권백이라는 음식이 당뇨병에 좋다고 하자. 누군가는 권백을 안 먹어서 당뇨병에 걸리는 것일까. 당뇨병에 좋은 음식은 권백뿐인가. 당뇨병에 이로운 음식은 권백 외에도 수없이 많다. 당뇨뿐만 아니라 고혈압, 암 등 여러 질병에 좋은 성분을 가진 음식 또한 다양하다. 하지만 그런 음식을 먹지 않아서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특정 음식을 먹지 않아서가 아니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기 때문에 병에 걸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환자를 진찰할 때 음식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먹는 것'과 '피하는 것', 뭣이 중헌디? 가공식품을 얼마나 자주 먹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공식품을 먹는 횟수와 양이 환자의 건강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한다. 가공식품을 많이 먹으면 건강이 나빠지고 적게 먹으면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음식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는 다양하다. 얼마 전 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내원한 여성은 과거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았다. 그는 지름이 10㎝정도 되는 자궁근종이 발견돼 병원에서 수술을 권유받은 뒤 2개월 정도 한약으로 비만치료를 하며 음식관리를 병행했다. 그러자 자궁근종의 크기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담낭암이 간으로 전이돼 1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던 어떤 환자는 항암치료와 함께 가공식품을 완전히 중단하고 자연식을 실천했더니 담낭암이 사라지고 간에 있던 암도 5㎜정도로 작아졌다. 하지만 그렇게 1년 반 정도를 유지하던 환자는 다시 암이 커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침과 저녁은 꾸준히 양질의 자연식으로 유지했지만 매일 점심 외식을 하며 가공식품을 먹은 것이 원인이었다. 잘 지내던 환자가 공교롭게도 가공식품을 먹은 후 암이 커져 불과 2~3개월 후에 응급실로 실려간 것이다. 몇년 전 아토피치료를 받던 환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자연식으로 식사를 하던 환자는 어느 날 남편과 외식으로 된장찌개를 먹었는데 국물 2~3숟가락에 불과한 양이었지만 그 다음날 아토피성피부염이 심해져 한동안 고생을 했다. 이미지 크게 보기 /사진=이미지투데이 필자는 앞에서 '공교롭게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환자를 진찰하다 보면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자주 일어난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라는 책을 읽은 이후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책에는 현재 우리가 섭취하는 가공식품의 제조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것을 인지한 이후 필자는 환자를 치료할 때 가공식품을 피하라고 강조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몸에 좋은 것을 먹는 것보다 가공식품을 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가공식품은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 있어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 그리고 가공식품으로 나빠진 몸을 좋은 채소를 먹어 회복하려고 한다. 가공식품도 실컷 먹고 브로콜리, 케일 등 몸에 좋은 것을 먹으면서 몸을 지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1년 후, "암이 사라졌어요" 하지만 환자를 꾸준히 진찰한 바에 의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필자 또한 과거에 아토피성피부염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겪어봤다. 과자 한개 먹으면 아토피가 심해지고 한번 심해지면 2주 이상 지속된다. 과자 한 봉지가 아니라 한개였다. 필자는 아토피에서 끝나지 않았다. 약 3년 전에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암을 다 제거하지 못해 좋지 않은 상태였다. 담당교수는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잘 받으라"고 권유했지만 필자는 항암치료 대신 이런저런 자연치유 방법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수술을 담당한 교수는 "항암치료는 왜 받지 않았느냐. 재발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항암치료를 담당하는 종양내과 교수 또한 "항암치료도 할 때가 있다"며 항암치료를 받지 않은 것을 나무랐다. 아마도 암이 커져 항암치료를 받으러 온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2주 후 나온 검사결과는 ‘암이 사라졌다’였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과 환자를 통한 간접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은 ‘무엇을 먹는 것보다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음식에 관한 수많은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무슨 병에는 무슨 채소가 좋다'는 이야기가 난무한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상 가공식품의 폐해를 이겨낼 채소는 없다. 채소를 포함한 여러 음식으로 몸을 건강하게 하려면 나쁜 음식을 피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그 후에 자기 몸에 이로운 음식을 찾는 것이 순서다. 건강하게 먹는 것에 대한 인식을 갖자. 병이 생기기 전에 가공식품을 끊고 건강한 식습관을 실천하자. 그것이 건강의 척도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실시간 재테크 경제뉴스│창업정보의 모든 것 유기용 해미소한의원 홍대점 원장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암 예방 식품 한약

월간암 암에 좋다는 음식들이 무수히 많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아도 항암식품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아주 많은 야채와 과일을 비롯해서 비교적 고가의 건강식품들과 한약 또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공식적인 항암제 등이 있으며 모두 암세포를 없애주며, 암에 좋다는 여러 가지 문구들로 선전하고 있다. 투병 중인 암환자라면 이렇게 넘쳐나는 정보들을 접하게 되면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헷갈린다’이다. 무엇을 선택해서 어떻게 먹어야 되는지 알려 주는 의사나 전문가도 없을뿐더러 같이 암과 투병하는 비전문가의 말만 듣고 무언가를 시작하자니 마음 속 한 구석은 편치 못하다. 더구나 항암치료 중이라면 식욕이 떨어져서 입에 무엇을 넣기가 부담스러운데 ‘항암’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음식을 먹으려니 입맛에 맞지 않아 애로사항이 너무도 많다. 최근에는 항암요리만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나마 입맛을 돋우려고 여러 가지 시각적인 효과와 함께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여 소개하는 책이나 방법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또 암환자만 모여서 요양하는 병원이 여러 곳 생겼는데 이런 요양병원을 이용한다면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요양원에서 생활할 수는 없다. 암에 대한 완치율이 높아졌고 투병 기간 또한 대부분 5년 이상의 장기적인 과정이 되었으므로 어떤 음식으로 암환자의 몸을 변화시키는 가에 따라서 삶의 질이 달라지며 생존 기간이 월등히 높아질 수 있다. 우선 병원의 치료는 의사라는 전문가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아 치료를 마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암이 사라질 수도 있으며 최소한 처음보다는 암의 크기가 작아질 확률이 높다. 따라서 병원의 치료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에 사라졌거나 작아진 암이 다시 활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을 수 있도록 하는 생활이 중요하며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생활하느냐에 따라 몸 속 암세포의 활동방향이 정해진다. 그래서 암환자에게는 식생활이 매우 중요하며 의료진들 또한 이 점을 환자에게 부각시켜서 설명해야 된다. 그저 무엇이든지 잘 먹어도 된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설명은 한 사람의 생명과 삶의 질을 개선시키지 못하고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변해가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은 몸에 적응해 가면서 몸의 노화와 함께 마음에도 노화가 진행된다. 시간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젊음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생활이 필요하며 실제로 그런 노력을 조금이라도 기울이면서 살아온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욱 젊어 보인다. 결국 우리 몸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변한다. 암이나 당뇨, 고혈압과 같은 현대인의 지병은 모두 그동안 살면서 먹은 음식 때문에 발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끔 어떤 의사들은 유전자를 탓하기도 하지만 잘못된 유전자가 내 몸 속에 있었다면 이미 더 젊었을 때, 아니면 아주 어렸을 때 건강을 잃었을 것이다. 결국 인생의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난 후에 암이나 당뇨와 같은 병이 생겼다면 그것은 그동안 내가 먹었던 음식 탓인 것이다. 따라서 암을 예방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지금 암을 앓고 있는 상황이라면 먹는 음식을 먼저 조사하여 항암식품이 아닌 것들을 찾아 바꾸어야 한다. 모든 음식을 100% 암에 좋은 음식만 고집하면서 섭취할 필요는 없지만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항암식품 위주의 식생활을 유지해야 된다. 그리고 지천에 널려 있는 게 바로 항암식품이다. 배가 고파서 요기가 필요하다면 고구마나 현미콩밥 등으로 허기를 채운다. 날로 먹어도 되지만 아무래도 쪄먹는 것이 편하다. 실제로 현미 같은 경우에는 발아를 시켜 물에 불려서 생으로 먹는 사람도 있다. 처음부터 생으로 먹으면 몸에 부담이 가고 소화흡수량이 작기 때문에 조금씩 양을 늘려 가는 방법으로 적응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주 오랜동안 여러 번 씹어야 소화가 된다. 생식의 가장 큰 단점은 소화 흡수량이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식 위주의 식사에 적응이 되어 있지 않다면 항상 허기진 상태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수개월간 몸의 적응이 끝난다면 몸과 마음은 마치 신선이 된 것처럼 맑고 상쾌해진다. 그러나 무리하게 생채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타협을 통해서 익힌 음식과 날로 된 음식을 일정 비율에 맞게 먹는 생활이 현명하다. 그리고 모자란 영양분은 생즙을 통해서 보충한다면 도움이 된다. 생즙을 만들기 위한 재료와 방법은 너무나 많다. 또 생즙은 과일이나 채소를 이용하여 지금 내게 필요한 영양소를 바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몸에 칼륨이 부족하다 싶으면 당근, 셀러리, 파슬리, 시금치와 같은 채소를 즙으로 만들어 칼륨위주의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 물론 딱 칼륨만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그런 영양소를 구입하여 먹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공장에서 나온 제품들은 화학첨가물이 안 들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가장 나중에 고려해야 될 방법 중에 하나이다. 생즙 중에서 암과 관련되면서 가장 흔하고 유용한 재료가 사과와 당근을 혼합한 즙을 내어 아침저녁으로 마시는 것이다. 한 번 먹을 때 머그컵으로 한 잔 정도가 적당한데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이 방법을 쓰는 분들을 본 적이 있는데 하루에 2리터 이상의 생즙을 만들어서 섭취하였다. 즉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양의 영양소가 필요하고 그 영양소는 암세포가 싫어하는 영양소이다. 채소에 함유된 영양소는 모두 암세포가 싫어하는 영양소이다. 그러나 과일의 섭취는 여러 가지 의견이 나누어져 있으니 조금씩 즙의 맛과 향을 내는 정도의 선에서 추가하자. 의사들은 대체적으로 암환자가 생즙을 먹는 것에 호의적이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생것이기 때문에 살균처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 그래서 감염의 우려가 높아진다는 것과 생즙을 다량 섭취할 경우 간에 무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실제 암과 투병하는 의사들을 주변에서 지켜보면 생즙을 먹으면서 투병하는 의사들을 더러 볼 수 있다. 그들도 나름대로의 원칙을 갖고 투병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암에 좋은 식품을 많이 먹자는 의견이다. 암에 좋은 식품은 채소와 과일 등 영양이 풍부한 음식에 많이 있으며 또 먹고 흡수량을 높이기 위해서 즙을 내어 먹는다. 선택은 결국 본인이 하는 것이니 누구의 말을 듣고 맹신하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음식을 찾아보는 노력이 중요하다. 남의 말과 인터넷에서만 흘러나온 정보들로만 투병하지 말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때 효과 있는 식품이나 제품을 찾을 수 있다.  채소와 과일에 있는 영양소는 정상세포는 좋아하고 암세포는 싫어한다는 연구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암세포가 비타민 C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여태 들어 본적이 없다. 그렇지만 비타민 C가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는 따져 볼 일이다. 공장에서 합성되어 나온 비타민과 햇빛 아래에서 엽록소를 통해서 만들어진 비타민은 아무래도 같은 비타민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니 자연에 가까운 제품이나 식품을 찾아서 먹자. 비용은 조금 더 들겠지만 나의 건강이 달린 일이지 않은가. 생즙과 관련된 서적이 시중에 무척 많이 나와 있으니 한 권 정도 골라서 읽어 본 후에 맞는 즙을 골라 꾸준히 섭취하면 암의 예방뿐만 아니라 치유에도 도움이 되며 실제 채소와 과일 즙으로 투병하여 완치에 이른 분들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요즘은 생즙을 배달시키거나 제품으로 나온 것들을 구입하여 섭취할 수도 있다. 모두 항암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집에 즙을 만드는 기계를 한 대 구입하고 마트에서 그에 걸맞은 채소와 과일을 구입해서 씻고 다듬은 후에 즙을 한 컵 내어 마시고 또 기계를 씻고 하는 일들이 만만치 않다. 요즘처럼 좋은 시절에 그런 노동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암을 예방하기 위해서 그런 제품들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항암식품을 먹는다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즙의 생명은 신선도이기 때문이다. 덩어리로 있던 채소가 어떤 기계를 통과하여 즙이 되었을 때 바로 먹어야 그 맛과 효과가 살아 있다.  제품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살균과정을 거쳐야 되는데 보통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된다. 고온에서 일정 시간을 거치거나 방사선을 조사하는 일이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살균을 위한 과정이지만 살아 있는 음식을 죽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살균 과정을 거치면 신선도와는 관계가 없는 제품이 된다. 그래서 일정 시간 동안 유통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제품에는 큰 변화가 안 생긴다. 물론 배달시켜서 먹는 즙이 편리하다는 장점과 함께 건강에 유익한 작용은 있으니 건강 증진이라는 작은 목적에는 도움이 되지만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될 내용이다. 매스컴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암에 좋다는 식품들을 모두 섭취할 수는 없다. 항암식품을 고를 때 가장 고려해야 될 내용은 접근성과 지속성이다. 즉 흔하게 구할 수 있어야 되고, 꾸준히 먹을 수 있어야 된다. 음식으로 병을 고친다는 게 하루 이틀로 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몇 십 년에 걸친 식습관이 암으로 나타났다면 최소한 그에 반 정도의 시간은 투자해야 되는 일이다. 결국 평생 동안 해야 할 생활요법이 바로 항암식품을 이용한 암의 예방과 치료라는 점을 잊지 말자. 장지혁 기자 마지막 수정: 2017.03.21 09:40

2017년 3월 19일 일요일

어깨질환,오십견

어깨에 힘 빠지고 우울한 오십대 질환, 오십견

고개를 숙이고 팔을 많이 사용하는 작업장 근로자나 칠판글씨를 많이 쓰는 선생님, 장시간 운전하는 운전기사,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는 프로그래머 등 경우 직업병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는 질환이다. 하지만 어깨 통증과 운동범위 제한이 있다고 해서 모두 오십견은 아니다. 어깨 통증을 유발할 수 있는 어깨힘줄파열, 석회성건염, 충돌증후군으로도 통증과 운동제한이 생길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오십견은 넘어지거나 부딪힌 일이 없었는데도 어깨 통증이 오다가 잠잘 때 통증이 심해서 중간에 여러 번 깨기도 한다. 오십견 초기에는 어깨 아래에서 움직임은 무리가 없지만, 팔을 어깨 위로 들거나 뒤로 돌리는 동작에서 주로 아프다가, 시간이 지나면 팔을 가만히 둬도 아파서 일상 생활하기 불편해지고 팔을 바깥쪽으로 돌리거나 위로 들기가 힘들어진다. 팔이 시려서 선풍기 바람이나 에어컨 바람을 쐬면 불편한 경우도 있다.
오십견은 일반적으로 3단계로 진행한다. 무엇을 해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고, 야간통증이 심해지는 동통기(4~6개월), 통증이 줄고 관절이 굳어지기 시작해 운동제한 특히 외회전 제한이 심한 동결기(4~12개월), 통증이 사라지고 운동력이 회복되는 해리기(4~6개월) 단계를 밟게 된다. 
동통기에는 치료를 해도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동결기에는 관절이 심하게 굳어가기 때문에 치료를 해도 잠깐만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파스에 의존하면서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오십견은 일정기간(1~2년) 보존적 치료로도 회복을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 말만 믿고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뒤늦게 치료를 해도 오랫동안 고통스럽다. 치료를 하지 않고 치료기간 몇 배가 될 수도 있는 기간 동안 고통으로 불편하게 생활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들 수 있다.
오십견 치료 목표는 통증을 완화하고 어깨운동 제한을 개선시키는 것인데, 한의학에서는 오십견의 가장 큰 원인을 어혈과 담음으로 이해한다. 어혈은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피가 한곳에 정체된 상태인데 밤에 심해지는 통증, 찌르는 듯한 통증, 고정된 부위 통증은 모두 어혈의 특징이다. 
오장 기능이 떨어지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생기며 바람(風), 찬 기운(寒), 습기(濕) 같은 외부 환경이 순환을 어렵게 해 만들어지는 어혈과 담음은 침, 뜸, 한약으로 소통을 시켜 풀어 줄 수 있다. 아울러 침 치료를 하면서 통증 부위를 운동시키는 동기요법은 관절 움직임을 유연하게 해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다.
어깨관절 통증 완화와 가동범위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 운동(스트레칭)이다. 하지만 오십견 초기에는 무리하게 운동을 하는 것은 통증을 증가시키거나 관절을 상하게 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스스로 운동을 무리하게 하기 보다는 전문의 도움을 받아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고정된 작업으로 인한 장기적인 운동결핍과 등을 구부리고 어깨를 펴지 않는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있거나, 기분이 우울하다고 해서 어깨에 힘이 빠진 자세를 하고 있으면 어깨관절에 무리를 주고, 국부 혈액순환에 지장을 주어 관절낭과 어깨 주위 힘줄에 염증이 생기는 오십견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평소에 틈날 때마다 기지개를 켜서 가슴과 어깨를 펴는 자세를 유지해 주면 근육의 긴장을 완화해 오십견 예방에 도움이 된다.

2017년 3월 17일 금요일

관절염

류마티스 관절염, 30~50대 여성에게서 가장 많이 발병

몸의 관절 여러 곳에 발생하는 류마티스 관절염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며 35세에서 50세 사이에서 주로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최근 식생활의 변화와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력이 저하된 20대와 30대 사이에서도 발현되고 있어 많은 이들이 이 질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류마티스 관절염의 주요 원인을 전문가들은 자가면역 현상에서 찾고 있다. 이는 활막 조직을 침범해 관절손상, 만성통증, 강직과 기능성 손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발병하면 손가락과 손바닥 부위에 통증을 느끼게 되고, 운동 기능에도 문제가 생기며, 아침에 일어날 때 관절이 뻣뻣해지는 증상과 함께 조조강직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신체 곳곳의 통증과 잦은 피로감, 식욕 저하, 신경쇠약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 질환은 관절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장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빠른 치료가 중요한데, 질환을 방치하게 되면 점진적으로 관절이 파괴되고 이로 인한 관절 변형이 일어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보행에 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에 한방에서는 면역계의 바탕이 되는 신정을 보충해 면역력의 정상화를 유도하는 한방치료법을 시행하고 있다.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맞춰 진행되는 한방치료법은 면역탕약, 면역약침요법, 명상생식요법, 왕뜸요법 등이 있으며, 그 중 왕뜸요법은 신체에 오랫동안 쌓여 있던 불순물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 면역약침요법은 약물을 인체의 경혈 자리에 주입하는 방법으로, 약물의 주성분인 봉독이 체내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면역력 감퇴로 인해 발생한 염증을 완화해준다.

나세종 이지스한의원 원장은 “류마티스 관절염은 단기간에 치료되는 것이 아니며 면역력 저하 시 재발 우려가 있는 질환이기 때문에 장기간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면서 “생활습관의 개선을 위해 충분한 수면과 식단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2017년 3월 14일 화요일

항노화 사업단 발족

전고혈압 전당뇨병 전고지혈증 전지방간 전발기부전 한의약 항노화 사업단 발족

2017년 3월 12일 일요일

허리디스크 구안와사 관절통증 팔다리통증

한의사, 허리디스크·구안와사엔 침 사용

 

흔히 허리디스크로 불리는 ‘요추추간판탈골증’이나 구안와사의 한 종류인 ‘특발성 안면신경마비’로 내원한 환자에 대해 한의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진료행위는 ‘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한의사들은 내원환자의 병명을 확진하는데 있어 ‘양방’의 검사결과를 신뢰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정형선)은 새로운 한방수가 개발을 위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의사들의 진료 행태 등을 조사한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설문조사는 대한한의사협회 회원으로 등록된 한의사 1만 600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17일부터 약 3주간 진행됐으며, 이메일 2회, SMS 1회의를 발송하는 등의 전자 설문 조사 방식이 사용됐다. 


설문에 응한 총 228명 가운데, 조사 당시 임상 현장에서 진료하고 있는 비율은 93.9%였으며, 임상경력은 10년 이상 20년 미만이 42.1%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들의 근무 기관은 한의원(78.5%), 한방병원(12.7%), 기타(4.8%), 요양병원(2.2%) 보건소 및 보건지소(1.8%) 순이었다.


조사결과, 65세 미만인 환자가 초진부터 치료 종료까지 한의원(또는 한방병원)을 10번 방문하는 경우, ‘요추추간판탈출증’의 경우 침 9.8회, 부항 6.9회, 약침 4.1회, 한약(비보험용) 3.4회, 뜸 3.3회의 순으로 진료행위가 많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건에서 ‘특발성 안면신경마비’ 환자들에 대한 다빈도 치료행위의 평균 빈도는 침이 9.0회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물리치료 6.5회, 전침 6.1회, 비보험용 한약제제 3.6회, 약침 2.5회, 보험용 한약제제 1.9회, 매선 0.3회의 순이었다.


또한, 이들 환자들이 10회 외래 방문 시 시행한 치료행위로 인해 발생한 평균 진료비는 요추추간판탈출증의 경우 44만 1000원, 특발성 안면신경마비는 46만 8000원이었다. 이 중 공단청구금액은 각각 43.8%(19.3만원), 44.0%(20만6천원)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환자부담금액이었다.


이들 외래환자의 진료 기간은, 요추추간판탈출증의 경우 최소 4.9주에서 최대 17.5주(진료횟수는 15회~50회)로 나타났으며, 특발성 안면신경마비는 4.2~15.9주, 진료횟수는 14.2~52.0회 수준이었다.


한편, 한의사들이 내원한 환자의 병명을 확진하는 데 있어서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은 ‘요추추간판탈출증’의 경우 ‘환자의 양방 병의원 검사결과 확인’이 38.5%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환자의 임상소견으로 판단(36.6%)’, ‘양방 병의원 검사의뢰(15.9%)’ 순이었다.


‘특발성 안면신경마비’의 경우도 ‘환자의 임상소견으로 판단(57.3%)’ 다음으로 ‘환자의 양방 병의원 검사결과 확인(25.3%)’, ‘양방 병의원 검사의뢰(10.7%)’ 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양방과의 협진 필요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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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9일 목요일

의림촬요

한국고전번역원-의림촬요(해제보기) 《의림촬요(醫林撮要)》의 편찬과 증보 과정   이경록 1. 머리말 조선 의학을 논의할 때 곧바로 머리에 떠오르는 의서는 1610년에 편찬된 《동의보감(東醫寶鑑)》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의서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의림촬요(醫林撮要)》이다. 《의림촬요》는 《동의보감》만큼 주목받아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에 《의림촬요》는 그 편제의 방대함은 말할 것도 없고, 초간본(初刊本)의 등장 이후 곧바로 증보와 간행 작업이 이어질 정도로 중시된 의서였다. 《의림촬요》와 그 저자에 대해서는 특이하게도 《의림촬요》의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에 소개되어 있다. 양예수(楊禮壽)- 자(字)는 경보(敬甫)이고 호(號)는 퇴사옹(退思翁)이며 홍농(弘農) 사람이다. 의술로 세상에 이름이 났으며 《의림촬요(醫林撮要)》 8권을 찬술하였다. - 《의림촬요》에서 《의림촬요》를 소개할 수 있었던 까닭은, 본문에서 서술하듯이 현존하는 《의림촬요》가 증보된 판본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의림촬요》에 대한 당대의 1차 기록은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실려 있다. 《의림촬요(醫林撮要)》- 우리나라 내의(內醫) 정경선(鄭敬先)이 편찬하고 양예수(楊禮壽)가 교정(校正)하였다. - 허준은 《의림촬요》를 양예수가 아니라 정경선이 편찬하였다고 적었다. 허준은 양예수와 동시대 인물일 뿐만 아니라 내의원(內醫院)에서 함께 근무한 동료이기도 하다. 《의림촬요》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허준의 언급은 신뢰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의림촬요》의 간행 경위는 말할 것도 없고 저자부터 살펴볼 필요가 제기되는 것이다. 나아가 《의림촬요》의 편제와 그 특징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본문에서는 양예수에 대해 먼저 살펴본 다음 《의림촬요》의 간행 경위를 정리하고, 그 구성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2. 양예수와 《의림촬요》의 편찬 《내의선생안(內醫先生案)》은 조선의 왕실 의료기관인 내의원에서 근무한 인물들의 인적사항을 정리한 문서이다. 허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자료는 선조 38년(1605)에 작성을 시작하였으며 순조 12년(1812) 이후까지 계속 내용을 증보하였다. 《내의선생안》에서는 양예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양예수(楊禮壽)- 자(字)는 경보(敬甫) -. 홍농(弘農) 사람- 자헌대부(資憲大夫 정2품 하),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겸(兼) 사복장(司僕將), 양천현령(陽川縣令), 호(號)는 퇴사옹(退思翁) -. 이에 따르면 양예수의 자는 경보이고, 본관은 홍농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홍농은 청주양씨(淸州楊氏)가 이칭(異稱)으로 사용하는 본관이다. 청주양씨는 중국 홍농(弘農) 사람인 당숙우(唐叔虞)의 후손이어서 중국 지명을 그대로 본관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치 자신들의 선조와 관련된 중국 지명을 따서 성주이씨(星州李氏)를 농서이씨(隴西李氏)라고 표현하거나 능성주씨(綾城朱氏)를 신안주씨(新安朱氏)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내의선생안》에는 양예수의 최고 품계를 자헌대부, 관직을 행동지중추부사로 간단히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최고 직위에 오르기 전까지의 양예수의 이력을 실록(實錄), 방목(榜目), 문집(文集)들에서 수집하여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양예수의 주된 이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명종 4년(1549) 의과(醫科) 식년시(式年試)에 합격. 자는 경백(敬伯), 본관은 청주(淸州 서원(西原)), 거주지는 한양〔京〕. 관직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심약(審藥). 아버지는 진위장군(振威將軍) 부사용(副司勇)인 양건(楊建) 명종 18년(1563) 9월 20일 내의(內醫) 양예수가 세자〔順懷世子〕를 치료 명종 19년(1564) 12월 21일 내의 양예수가 오랫동안 주부(主簿 종6품)로 근무하여 예빈시 판관(判官 종5품)으로 승진 명종 20년(1565) 4월 12일 대왕대비가 사망하자 신하들이 양예수 등의 의관들을 추국할 것을 주장 명종 20년(1565) 10월 9일 양예수가 통정대부(通政大夫 정3품)로 가자(加資) 명종 22년(1567) 6월 28일 명종 사망으로 진료를 담당한 양예수 등의 내의들이 의금부에 하옥 선조 3년(1570)~선조 6년(1573) 양예수가 유희춘(柳希春)과 그 가족 및 지인들을 지속적으로 치료 선조 11년(1578) 7월 4일 내의원 제조의 요청으로 상인(喪人)인 내의 양예수에게 서울로 올라오게 했으나, 양예수는 여묘(廬墓)를 살면서 복(服)을 마치겠다고 상소 선조 13년(1580) 11월 27일 의관 양예수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 종2품 하)를 가자 선조 18년(1585) 8월 24일 양예수 아들의 방목(榜目) 기사에 양예수 관직이 행부호군(行副護軍)으로 표기 선조 19년(1586) 10월 8일 어의(御醫) 양예수에게 가의대부(嘉義大夫 종2품 상)를 가자 선조 20년(1587) 12월 9일 선조를 치료한 공으로 어의 양예수 등에게 녹비(鹿皮)를 하사 선조 28년(1595) 6월 11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ㆍ同知事) 양예수가 세자를 치료하자 말 1필을 하사 선조 30년(1597) 1월 16일 세자 질병을 치료한 공으로 양예수 등 4명에게 작질(爵秩)을 더한 것을 신하들이 반대 선조 30년(1597) 4월 14일 의관 양예수ㆍ허준ㆍ이공기와 침의(針醫) 5명이 선조를 침으로 치료 선조 32년(1599) 7월 24일 임진왜란 중 수안(遂安)에 머무르던 중전(中殿)을 호위한 공으로 의관 양예수 등에게 말 1필을 하사 선조 33년(1600) 12월 1일 사망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ㆍ知事) 양예수에게 우승지를 통해 부의(賻儀) 광해군 4년(1612) 3월 13일 양예수 아들의 방목(榜目) 기사에 양예수의 최종 품계를 정헌대부(正憲大夫 정2품 상), 관직을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로 표기 그런데 동시대를 살았던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는 양예수의 젊은 시절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젊은 양예수는 문신(文臣)이자 문인(文人)인 정사룡(鄭士龍)을 만났다, 정사룡이 시험삼아 읽고 있던 책을 그에게 잠깐 가르치자 양예수는 곧바로 줄줄 외우면서 틀리는 곳이 전혀 없었다. 정사룡이 크게 놀라며 ‘너의 재주로 문장을 배운다면 내 의발(衣鉢)을 전해 줄 것이다’라고 하였지만,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녹봉 받는 벼슬자리가 다급했던 양예수는 결국 의과(醫科)에 응시하였고 명의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양예수의 집안에 대해서는 청주양씨 족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족보에 따르면 양예수는 청주양씨(淸州楊氏) 서평군파(西平君派) 8대손(9세손)이다. 양예수의 고조인 양자순(楊子淳)은 서산군수(瑞山郡守)를 지냈고 증조인 양담(楊澹)은 통정대부(通政大夫) 행사헌부장령(行司憲府掌令)이었다. 하지만 조부인 양세호(楊世豪)가 통정대부(通政大夫) 판결사(判決事)로 추증되고, 아버지인 양건(楊健)은 가선대부(嘉善大夫) 한성좌윤(漢城左尹)으로 추증되었다고만 기록된 것으로 보아 양세호와 양건은 관운(官運)이 없었다. 즉 《어우야담》의 기록처럼 양예수의 대에 이르러서는 집안이 한미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양예수의 형인 양인수(楊仁壽)는 의관이면서 선조의 잠저(潛邸) 시절 스승이었는데, 선조가 양인수를 승진시키려 하자 이조에서는 그가 미천(微賤)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반대한 데서도 양예수 집안의 문지(門地)가 그리 높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양건과 그 부인인 청도김씨(淸道金氏)는 양인수(楊仁壽), 양예수(楊禮壽), 양신수(楊信壽), 양지수(楊智壽)를 낳았다. 양예수에 대해 족보에서는 “부사(府使)이며 광국원종공신(光國原從功臣)이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이다. 부인〔配〕은 정부인(貞夫人)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묘(墓)는 강화(江華) 홍해리(弘海里)이다.”라고 하였다. 양예수의 아들은 양홍무(楊弘茂), 양홍도(楊弘度), 양홍주(楊弘澍)이며 딸은 오흥조(吳興祖)에게 시집을 갔다. 양예수의 형제 가운데에는 양인수 외에 양지수도 의관이었다. 양지수는 임진왜란 때 왜적의 포로가 되었는데, 왜적을 꾸짖으며 강에 투신하여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양예수의 집안은 의업(醫業)으로 대를 잇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양예수의 아들 가운데 양홍무와 양홍도는 생원(生員)으로 되어 있으며, 양홍주는 참봉(參奉)으로 족보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양홍무와 양홍도는 사마방목(司馬榜目)에서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양홍무는 명종 14년(1559)에 태어났는데, 선조 18년(1585) 식년시(式年試)에 생원 3등(三等) 41위 즉 전체 합격자 100명 중 71등으로 합격하였다. 그리고 양홍도는 선조 4년(1571)에 태어났는데, 광해군 4년(1612) 식년시에 생원 3등(三等) 62위 즉 전체 합격자 100명 중 92등으로 합격하였다. 두 명 모두 생원시에 급제했으므로 의술에 종사한 것은 아니다. 이상의 자료를 정리한다면,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던 양예수(?~1600)는 명종 4년(1549) 의과에 합격한 이래 선조대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의관으로 점차 성장하였다. 양예수와 양인수ㆍ양지수가 의관으로 활동하였지만, 그의 집안이 대대로 의업에 종사하지는 않았다. 양예수는 왕실 가족들이나 명종의 사망으로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대체로 국왕들의 신임 속에 왕실 의료를 담당하였다. 관직 생활에서는 지방의 심약(審藥)이나 양천현령(陽川縣令) 같은 외직(外職)을 맡기도 하였지만, 의관 생활의 대부분은 내의원에서 보냈다. 따라서 양예수가 《의림촬요》를 편찬할만한 실력을 갖췄다는 것은 틀림없다. 《의림촬요》에는 편찬 목적을 직접 알려주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다. 하지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통해 그 편찬 동기는 이해할 수 있다. 기운이 변하고 풍토가 각기 달라 옛날에는 알맞았더라도 지금은 알맞지 않으며 중국(中國)에서는 사용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 용도에 맞는 것은 취하고 부적합한 것은 버려야 비로소 전서(全書)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선조조(宣祖朝)에 고(故) 명의(名醫) 양예수(楊禮壽)에게 명하여 《의림촬요(醫林撮要)》를 편찬하게 한 것입니다. 이 책이 한번 나오자 단지 약을 의논하고 조제할 때 사람들이 매우 편하게 여겼을 뿐만 아니라…- 7자 원문 빠짐 -… 한번 책을 펴면 증상에 대해 조제하는 것을 알 수 있어 그 혜택이 넓고…- 5자 원문 빠짐 -….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의림촬요》는 조선의 풍토와 실정에 적합한 의서로 편찬되었으며, 특히 증상에 따른 조제에 아주 편리한 실용적인 의서였다. 그런데 인용문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양예수가 선조의 명으로 편찬을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의림촬요》는 일종의 관찬의서(官撰醫書)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의림촬요》는 내의원에서 거의 평생을 보낸 양예수와의 관련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이 내의원과 연관되어 편찬되었음은 그 간행 기록을 살펴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원래의 《의림촬요》에 대한 설명은 머리말에서 언급한 두 가지이다. 《의림촬요》는 내의(內醫) 정경선(鄭敬先)이 편찬하고 양예수(楊禮壽)가 교정(校正)하였다는 허준의 기록과 《의림촬요》는 양예수가 8권으로 편찬하였다는 〈역대의학성씨〉의 기록이다. 허준은 양예수와 함께 내의원 어의로서 선조를 진료한 기사들이 자주 등장하는 데서 보이듯이 양예수를 잘 알고 있었다. 〈역대의학성씨〉 역시 당대에 편찬된 자료이므로, 양예수에 대한 설명에 오류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위 기록을 신뢰한다면, 원래의 《의림촬요》는 정경선이 편찬하고 양예수가 교정을 완료한 의서로서 8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경선이란 사람은 실록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크게 이름을 떨치지는 못한 의관인 것이다. 하지만 내의원 의관들을 시대순으로 정리한 《내의선생안》에는 정경선이 보인다. 이 가운데 한 면인 〈그림1〉을 보면 양예수, 허준, 정경선이 모두 등장한다. 양예수와 허준의 설명이 상세한 데 반해 정경선에 대해서는 짧게 언급되어 있다. 정경선(鄭敬先) - 내의원 정(正 정3품) - . 〈그림1〉에서 보이듯이 정경선은 양예수나 허준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양예수나 허준과 동시대의 인물이라는 의미이다. 김홍균의 연구에 따르면, 정경선은 경주정씨(慶州鄭氏)로 중종 31년(1536)에 태어나 선조 17년(1584)에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양예수는 1549년에 이미 식년시에 합격했으므로 1536년생인 정경선보다는 연배가 높다. 한편 정경선이 역임한 정3품인 내의원 정(正)은 내의원 규정상 의관이 승진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이기도 하다. 정경선이 정치적으로는 출세하지 못했지만, 내의원 의관으로 꽤 오래 근무하고 상당한 실력도 갖추었던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내의선생안》의 기록까지 보완해서 이해하자면, 원래의 《의림촬요》는 양예수가 의서 편찬을 책임지고, 정경선이 편찬 실무를 담당한 것이다. 선조의 명으로 양예수가 편찬을 시작하였으므로 내의원 의관인 정경선이 실무에 투입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의림촬요》의 편찬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허준은 ‘정경선이 편찬하고 양예수는 교정하였다’고 상세하게 표현한 것이고, 후대에는 《의림촬요》가 양예수의 저작으로 알려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정경선과 양예수의 편찬 역할 분담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오랜기간 내의원에서 활동한 양예수 역시 《의림촬요》의 편찬에는 깊숙이 관여했을 것이다. 현존하는 《의림촬요》에는 각 권 서두마다 퇴사옹 양예수가 편찬하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원래의 《의림촬요》는 8권으로 되어 있었으며, 1615년 이후 〈역대의학성씨〉가 정리될 때까지도 8권본 형태로 존재하였다. 편의상 정경선과 양예수가 편찬한 이 《의림촬요》를 ‘《의림촬요》 초간본(初刊本)’이라고 부르겠다. 《의림촬요》 초간본의 간행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초간본이 남아 있지도 않고 간행 시기를 명시하는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포괄적으로 언급하자면, 《의림촬요》 초간본은 선조의 명을 받아 양예수가 편찬하였으므로 선조 즉위년인 1567년에서 양예수가 사망한 1600년 사이에 간행되었다. 실제로 《의림촬요》는 곧이어 1610년에 편찬되는 《동의보감》에서 33조가 인용되며, 초간본이 인쇄되었다는 점은 《승정원일기》에서도 확인이 된다. 그런데 앞의 양예수 연보를 다시 살펴보면 선조대에 양예수의 의관 기록이 본격화되는 것은 선조 13년(1580) 가선대부를 가자(加資) 받은 때부터이다. 그리고 정경선의 사망 연도는 선조 17년(1584)이었다. 즉 《의림촬요》 초간본의 간행 시기를 조금 더 압축하자면 1580년대 초반에 간행되었을 수 있다. 3. 《의림촬요》의 증보 경과 1600년 양예수가 사망하고 몇 년 뒤에는 《의림촬요》를 보완하는 의서가 간행되었다. 목활자(木活字)로 인쇄한 《의림촬요속집(醫林撮要續集)》 2권 2책이다. 이 책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권1이 소장되어 있고 국립중앙도서관에 권2가 소장되어 있다. 《의림촬요속집》 권2 본문 마지막에는 “만력(萬曆) 36년(1608, 광해군 즉위년) 9월 일, 내의원에서 인쇄하다. 감교관(監校官)은 통훈대부 행내의원판관 신(臣) 이객(李), 감교관은 통훈대부 행내의원주부 신(臣) 이희헌(李希憲)이다.”라는 간기(刊記)가 들어 있다. 이객과 이희헌은 인쇄 시의 교정 책임을 지는 감교관(監校官)이므로, 이들은 《의림촬요속집》의 편찬자가 아니다. 이희헌은 1615년에 내의원에서 간행한 《신간보주석문황제내경소문(新刊補註釋文黃帝內經素問)》을 감교(監校)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의림촬요속집》의 편찬자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1608년 내의원에서 《의림촬요속집》을 간행했음은 확인이 된다. 그렇다면 《의림촬요속집》과 《의림촬요》의 관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의림촬요속집》은 1608년 간행이며, 현존하는 《의림촬요》 삼간본(三刊本)이 1676년 간행이라는 점은 후술하는 바와 같이 분명하다. 〈표2〉에서 보이듯이 현존하는 《의림촬요》는 재간본(再刊本)보다는 삼간본(三刊本)이 많으므로, 여기에서는 《의림촬요》 삼간본으로 분석해보자. 《의림촬요속집》과 《의림촬요》 삼간본에서 내상문(內傷門)의 기록을 대조하면 다음과 같다. 《의림촬요속집》:보진고(補眞膏), 운림윤신환(雲林潤身丸), 구선왕도고(九仙王道糕), 익기환(益氣丸), 향사양위탕(香砂養胃湯), 향사평위산(香砂平胃散), 신선불취단(神仙不醉丹), 백설고(白雪糕), 보화환(保和丸), 가감보중탕(加減補中湯), 백출환(白朮丸), 오매환(烏梅丸), 불취방(不醉方). 《의림촬요》 삼간본:병론(病論), 주하(注夏), 식치(食治), 식기(食忌), 익비원(益脾圓), … 삼령환(參苓丸), 삼출건비탕(蔘朮健脾湯), 보진고(補眞膏), 운림윤신환(雲林潤身丸), 구선왕도고(九仙王道糕), 익기환(益氣丸), 향사양위탕(香砂養胃湯), 향사평위산(香砂平胃散), 신선불취단(神仙不醉丹), 백설고(白雪糕), 보화환(保和丸), 가감보중탕(加減補中湯), 백출환(白朮丸), 오매환(烏梅丸), 불취방(不醉方). 굵게 표시한 부분에서 두 의서의 기록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보진고~신선불취단은 인용 의서가 《만병회춘》이고, 백설고~불취방은 인용 의서가 《단계심법부여》라고 표기된 것까지 일치한다. 《의림촬요속집》과 《의림촬요》 삼간본에서는 《만병회춘》과 《단계심법부여》의 처방들을 순서까지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의림촬요》의 다른 병문들에서도 《의림촬요속집》의 기사들은 처방 말미에 덧붙여져 있다. 즉 《의림촬요》의 각 병문은 병론→처방들→울법(熨法 찜질법)→구법(灸法 뜸 치료법)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의림촬요속집》의 기사들은 처방들과 울법 사이에 삽입되어 있다. 그런데 현존하는 《의림촬요》 삼간본이 양예수가 직접 편찬한 내용 그대로라면, 양예수 사후에 편찬된 《의림촬요속집》은 《의림촬요》 초간본의 축약본(縮約本)이지 ‘속집(續集)’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양예수가 편찬한 《의림촬요》 초간본의 내상문 처방들 말미에, 다시 말하면 삼출건비탕 다음에 《의림촬요속집》 기록을 덧붙여서 현존하는 《의림촬요》 재간본(1635, 인조13)과 삼간본(1676, 숙종2)이 만들어진 것이다. 《의림촬요》 삼간본에서는 《의림촬요속집》의 문장을 대체로 충실하게 인용하였지만, 열람의 편의를 위해 깔끔하게 문장을 다듬기도 하였다. 중풍문(中風門)의 문장을 비교해보자. 용성단(龍星丹)은 여러 종류의 풍열(風熱)로 인해 담연(痰涎)이 가득 찬 것을 치료하는데, 별도로 간 편뇌(片腦), 우황(牛黃), 사향(麝香)이 3자(字)씩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대조를 위해 원문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의림촬요속집》:龍星丹. 治諸風熱, 壅痰涎盛. …片腦- 另硏三字 -ㆍ牛黃- 另硏三字 -ㆍ麝香- 另硏三字 -…. 《의림촬요》 삼간본:龍星丹. 治諸風熱, 壅痰涎盛. …片腦ㆍ牛黃ㆍ麝香- 並另硏, 各三字 -…. 《의림촬요속집》에서는 약재별로 일일이 ‘별도로 간 것 3자(字)〔另硏三字〕’라고 한 데 반해 《의림촬요》 삼간본에서는 ‘세 약재 모두 별도로 간 것, 이상의 약재들은 각 3자(字)〔並另硏, 各三字〕’라고 깔끔하게 문장을 다듬은 것이다. 이제 《의림촬요속집》에서 《의림촬요》 삼간본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두 의서의 편제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표1〉 《의림촬요속집》과 《의림촬요》 삼간본의 편제 비교 의서 병문(病門) 순서 《의림촬요속집》 중풍문 (中風門) 유중풍문 (類中風門) 예방중풍문 (預防中風門) 상한문 (傷寒門) 중한문 (中寒門) 온역문 (瘟疫門) 반진문 (癍疹門) 《의림촬요》 삼간본 중풍문(中風門) 부유중풍(附類中風) 부예방중풍(附預防中風) 통풍문 (痛風門) 상한문(傷寒門) 부중한(附中寒) 온역문 (瘟疫門) 반진문 (斑疹門) 위 표는 《의림촬요속집》과 《의림촬요》 삼간본의 권1~권2 앞부분의 병문 순서를 비교한 것이다. 〈표1〉에서는 《의림촬요속집》의 내용들이 《의림촬요》 삼간본으로 통합되는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양예수가 편찬한 8권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아마도 중풍문(中風門)→통풍문(痛風門)→상한문(傷寒門)→온역문(瘟疫門)→반진문(斑疹門) 등의 순서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의림촬요속집》에서는 〈표2〉에 보이는 바와 같이 중풍문(中風門)→유중풍문(類中風門)→예방중풍문(預防中風門)→상한문(傷寒門)→중한문(中寒門)→온역문(瘟疫門)→반진문(癍疹門) 등의 순서대로 보완하였다. 《의림촬요속집》에서는 풍(風)과 관련된 내용과 한(寒)과 관련된 내용 등이 증보된 것이다. 그리고 《의림촬요》 초간본과 《의림촬요속집》을 합하여 《의림촬요》 재간본과 삼간본이 만들어질 때는 《의림촬요속집》의 ‘중풍문(中風門), 유중풍문(類中風門), 예방중풍문(預防中風門)’이 ‘중풍문(中風門) 부유중풍(附類中風) 부예방중풍(附預防中風)’으로 한데 묶였다. 《의림촬요속집》이 간행된 이후에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가 별도로 만들어진다. 〈역대의학성씨〉의 작성자가 양예수가 아니라는 점은 〈역대의학성씨〉에서 양예수와 허준을 수록하는 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양예수가 〈역대의학성씨〉를 작성하였다면, 양예수 스스로가 자신을 〈역대의학성씨〉의 한 사람으로 자부하면서 ‘의술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고 소개하는 셈이 되므로 아주 이상해진다. 〈역대의학성씨〉의 작성 연도를 구체적으로 추정하자면 허준 소개에 등장하는 몇 가지 내용들이 단서가 된다. 〈역대의학성씨〉에서는 허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허준(許浚)- …관직은 숭록대부(崇祿大夫) 양평군(陽平君)에 이르렀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25권, 《언해두창집(諺解痘瘡集)》 1권, 《언해태산집(諺解胎産集)》 1권,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 1권, 《신찬벽온방(新纂辟瘟方)》 1권을 찬술하였다. - 위 기록에서 허준이 숭록대부로 임명된 것은 1606년이고, 《동의보감》 편찬은 1610년이고, 간행은 1613년 이다. 그리고 《신찬편온방》 편찬은 1612년이고, 영의정으로 추증된 것은 1615년 허준 사망 이후의 일이다. 결국 〈역대의학성씨〉는 1615년 이후에 만들어진 자료인 것이다. 양예수는 1600년에 이미 사망하였으므로 〈역대의학성씨〉의 저자가 될 수 없다. 이처럼 별도로 편찬된 〈역대의학성씨〉가 《의림촬요》에 합본된 시기는 1615년에서 1635년 사이이다. 1635년은 《의림촬요》가 다시 간행된 해이다. 《의림촬요》 재간이 요구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의림촬요》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도 있지만, 특히 이괄(李适)의 난(1624, 인조2) 때문이었다. 《의림촬요》 초간본은 의료 관서에 배포되고 지방에도 유포되었으나 이괄의 난으로 산실되었다. 지방에 나누어 주었던 《의림촬요》를 거두어도 권질이 다 갖추어지지 않는 지경이었다. 처방에 소용되는 약재량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민간을 분주히 뒤지며 다닐 정도였다. 이 때문에 호조(戶曹)와 병조(兵曹)의 물자를 매매하여 그 이식(利息)으로 《의림촬요》를 재간(再刊)하자는 논의가 나타났다. 하지만 《의림촬요》의 인출(印出)이 실제로 진행된 것은 논의가 시작된지 거의 10년이 지나서였다. 인조 12년(1634) 8월 1일에 《의림촬요(醫林撮要)》를 인출하기 시작하였는데 공장(工匠)들에게 소요되는 비용은 도체부(都體府), 총융청(摠戎廳), 상평청(常平廳), 사복시(司僕寺) 등에서 부담하였고, 드디어 이듬해인 인조 13년(1635) 2월 22일에 내의원(內醫院)에서 인쇄와 반포를 막 마쳤다고 보고하였다. 인조 13년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을 ‘《의림촬요》 재간본(再刊本)’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의림촬요》 재간본은 치료 시에 널리 활용되었다. 간단히 두 개의 활용 사례만 들자면 인조의 귓병에 대해서는 《의림촬요》 이병문(耳病門)에 나오는 투이통(透耳筒) 처방을 참고하였고, 현종을 치료할 때는 《의림촬요》의 가미국화산(加味菊花散)을 토대로 삼았다. 〈그림2〉에서 보이듯이 《의림촬요》 재간본은 13권본이다. 권13 본문 마지막에는 인출기(印出記)가 있다. 당시 간행에 참가했던 내의원의 도제조는 윤방(尹昉), 제조는 최명길(崔鳴吉), 부제조는 정백창(鄭百昌)이며 감교관은 내의원 의관인 윤홍임(尹弘任)과 송경일(宋擎日)이었다. 《의림촬요》 재간본과 뒤이어 다룰 《의림촬요》 삼간본을 비교해보면 〈그림2〉와 같다. 〈그림2〉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재간본과 삼간본의 본문은 완전히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본문 말미의 인출기가 재간본에는 있고, 삼간본에는 없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따라서 《의림촬요》 재간본 권1은 현존하지 않지만, 《의림촬요》 삼간본과 마찬가지로 권1의 첫머리에는 〈역대의학성씨〉를 수록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그림2〉에서 재간본과 삼간본의 글씨를 유심히 대조해보면, 목활자(木活字)로 만든 재간본에서는 나무의 결이 일부 보이며, 글자를 나무에 새긴 탓에 글씨가 약간 딱딱한 느낌을 준다. 현재 《의림촬요》 재간본은 〈표2〉에서 정리하듯이 한독의약박물관, 허준박물관, 성암고서박물관,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의림촬요》는 지금까지 살펴본 재간본과 함께, 이제 살펴볼 숙종 2년(1676)의 삼간본(三刊本)이 존재한다. 두 판본이 시차는 41년인데, 현존하는 《의림촬요》는 대부분이 《의림촬요》 삼간본이다. 조선에서는 국가기관에서 도서를 인쇄한 이후에 반사기(頒賜記)를 작성하였다. 도서 배포자 명단을 작성하여 국왕에게 보고한 것이다. 국왕은 명단 중에서 해당자를 낙점하는 방식으로 도서를 하사하였다. 이때 국왕이 하사한 이른바 내사본(內賜本)들은 하사 기록〔內賜記〕이 도서 표지 안쪽에 적혀 있는데, 현존하는 《의림촬요》들 역시 내사기가 남아 있다. 서울대 규장각의 《의림촬요》에는 “강희(康熙) 15년(1676) 11월 19일, 행부호군(行副護軍) □□□에게 《의림촬요》 1건을 내사(內賜)한다. 감사 인사는 면제한다. 우승지(右承旨) 신(臣) 정(丁) 아무개 〔수결〕”라는 내사기(內賜記)가 적혀 있다. 또한 대구가톨릭대도서관의 《의림촬요》에도 “강희 15년(1676) 11월 19일, 이조좌랑(吏曺佐郞) 이담명(李聃命)에게 《의림촬요》 1건을 내사한다. 감사 인사는 면제한다. 우승지(右承旨) 신(臣) 정(丁) 아무개 〔수결〕”라는 내사기가 적혀 있다. 그리고 동일한 시기인 숙종 2년(1676) 11월에는 송정렴(宋挺濂, 1612~1684) 역시 《의림촬요》를 하사받았다. 3군데 기록에서 내사된 시점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숙종 2년에 《의림촬요》가 삼간되면서 곧바로 반사(頒賜)된 정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대 규장각의 《의림촬요》 설명에 따르면 규장각 소장 《의림촬요》는 무신자(戊申字) 곧 사주갑인자(四鑄甲寅字)로 인쇄되었다. 무신자는 현종 9년(1668) 김좌명(金佐明)이 호조 및 병조의 물자와 인력을 사용하여 수어청(守禦廳)에서 주조한 금속활자이다. 이 무신자(戊申字)로 몇 년 뒤인 숙종 2년(1676)에 《의림촬요》를 삼간(三刊)한 것이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의림촬요》 재간본과 삼간본의 권별 소장처는 다음과 같다. 〈표2〉 《의림촬요》 재간본과 삼간본 소장처 권 재간본 삼간본 권1 서울대 규장각, 대구가톨릭대 권2 서울대 규장각, 대구가톨릭대 권3 서울대 규장각 권4 한독의약박물관 서울대 규장각, 대구가톨릭대, 계명대 권5 허준박물관 대구가톨릭대 권6 서울대 규장각, 대구가톨릭대 권7 성암고서박물관 서울대 규장각 권8 고려대 도서관 서울대 규장각, 대구가톨릭대 권9 고려대 도서관 서울대 규장각, 대구가톨릭대, 한독의약박물관 권10 고려대 도서관 서울대 규장각, 대구가톨릭대 권11 대구가톨릭대 권12 서울대 규장각, 대구가톨릭대, 계명대 권13 고려대 도서관 서울대 규장각, 대구가톨릭대, 경북대, 한독의약박물관 《의림촬요》 권1(서울대 규장각본)의 규격을 살펴보면, 표지 크기는 22cm☓34.4cm, 본문의 반곽(半郭) 크기는 첫페이지의 경우에 18.4cm☓25.8cm이다. 반곽 크기는 본문 쪽수마다 미세하게 달라지는데 예컨대 17.7cm☓25.2cm의 반곽도 있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의림촬요》는 편찬 이후 몇 차례의 증보 과정을 거쳤다. 이를 간단하게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3〉 《의림촬요》의 편찬 증보 과정 내용 시기 권수 비고 《의림촬요》 초간본 간행 1567~1600년 8권 정경선 편찬, 양예수 교정 《의림촬요속집》 간행 1608년 (광해군 즉위년) 2권 편자 미상, 이객ㆍ이희헌 감교 〈역대의학성씨〉 작성 1615~1635년 - 편자 미상 《의림촬요》 재간본 간행 1635년(인조13) 13권 목활자본, 《의림촬요속집》과 〈역대의학성씨〉를 합본 《의림촬요》 삼간본 간행 1676년(숙종2) 13권 금속활자본(무신자), 《의림촬요》 재간본과 동일한 내용 〈표3〉에 나온 바와 같이 정경선의 실무 작업을 토대로 양예수는 8권으로 된 《의림촬요》 초간본을 편찬하였다. 간행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의료 관서와 지방에 유포되었다는 후대의 기록으로 미루어, 양예수가 사망하는 1600년 이전에 내의원에서 간행되었을 것이다. 《의림촬요》 초간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1608년에는 《의림촬요속집》 2권이 《의림촬요》 초간본의 미진한 처방을 보완하여 간행되었다. 이후 이괄의 난(1624) 등으로 《의림촬요》 초간본이 희소해지자, 《의림촬요》 초간본과 《의림촬요속집》을 합본하면서 〈역대의학성씨〉를 책 앞부분에 덧붙인 증간본이 간행되었다. 바로 1635년에 목활자로 간행된 《의림촬요》 13권본(재간본)과, 다시 41년 뒤인 1676년에 금속활자(무신자)로 간행한 《의림촬요》 13권본(삼간본)이다. 이 국역본에서 대본으로 삼은 것은 《의림촬요》 삼간본이다. 4. 《의림촬요》의 편제와 특징 《의림촬요》 본문에서 권1의 맨 처음에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가 실려 있음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다. 〈역대의학성씨〉에는 총 224명의 인물이 수록되어 있다. 상고(上古)의 성현(聖賢)〔上古聖賢〕은 복희씨(伏羲氏)를 비롯한 13명, 유의(儒醫)는 장기(張機)를 비롯한 41명, 명의(明醫)는 편작(扁鵲)을 비롯한 103명, 세의(世醫)는 누호(樓護)를 비롯한 28명, 덕의(德醫)는 서문백(徐文伯)을 비롯한 18명, 선선도술(仙禪道術)은 장상군(長桑君)을 비롯한 19명, 본국명의(本國明醫)는 양예수(楊禮壽)와 허준(許浚) 2명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의림촬요》의 〈역대의학성씨〉는 《의학입문(醫學入門)》〈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에 등장하는 215명의 전기를 그대로 인용하였다. 여기에 중국 의학자 7명(진무택, 송 태종, 왕도, 이천, 왕새, 공신, 공정현)과 조선 의학자 2명(양예수와 허준)을 추가 수록한 것이었다. 〈역대의학성씨〉를 통해 동양의학의 원류를 정리하고자 하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대의학성씨〉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각종 질병을 다룬다. 중풍문(中風門)을 비롯한 다양한 병문(病門)들이 배치되어 있다. 각 병문별로는 질병의 원인과 그 기전을 다루는 병론(病論)을 필두로 처방들→울법(熨法 찜질법)→구법(灸法 뜸 치료법)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식이요법〔食治〕, 금기 음식〔食忌〕까지 중요하게 다루는 점이 독특하다. 중풍문(中風門)에서 잡방(雜方)에 이르는 120개의 《의림촬요》 병문을 권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권1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 중풍문(中風門)‚ 통풍문(痛風門)‚ 상한문(傷寒門) 권2 온역문(瘟疫門)‚ 반진문(斑疹門)‚ 내상문(內傷門)‚ 서증문(暑證門)‚ 습증문(濕證門)‚ 종창문(腫脹門)‚ 조증문(燥證門) 권3 화열문(火熱門)‚ 울증문(鬱證門)‚ 비만문(痞滿門)‚ 열격문(噎膈門)‚ 구토문(嘔吐門)‚ 탄산문(呑酸門)‚ 해역문(咳逆門)‚ 적취문(積聚門)‚ 기증문(氣證門)‚ 담음문(痰飮門) 권4 해수문(咳嗽門)‚ 성음문(聲音門)‚ 학질문(瘧疾門)‚ 곽란문(霍亂門)‚ 설사문(泄瀉門)‚ 이질문(痢疾門)‚ 탈항문(脫肛門) 권5 허손문(虛損門), 변탁문(便濁門), 노극문(勞極門), 정충경계건망문(怔忡驚悸健忘門), 전광간증문(癲狂癎證門), 치증문(痓證門), 궐증문(厥證門), 사수문(邪祟門) 권6 삼소문(三消門)‚ 각기문(脚氣門)‚ 위증문(痿證門)‚ 마목문(麻木門)‚ 산증문(疝症門)‚ 현훈문(眩暈門)‚ 두통문(頭痛門)‚ 제충문(諸蟲門)‚ 위완통문(胃脘痛門)‚ 복통문(腹痛門) 권7 요통문(腰痛門)‚ 협통문(脇痛門)‚ 이통문(耳痛門)‚ 비병문(鼻病門)‚ 면병문(面病門)‚ 안목문(眼目門)‚ 구설문(口舌門)‚ 아치문(牙齒門) 권8 후비문(喉痺門)‚ 혈증문(血症門)‚ 치루문(痔漏門)‚ 한증문(汗證門)‚ 임폐문(淋閉門)‚ 비결문(秘結門)‚ 황달문(黃疸門) 권9 제독교상문(諸毒咬傷門)‚ 상손문(傷損門), 탕화상(湯火傷), 금창(金瘡), 전촉입골방(箭鏃入骨方), 죽목침자입육방(竹木鍼刺入肉方), 장창(杖瘡), 옹저문(癰疽門), 취잉골법(取剩骨法), 부골저방(附骨疽方), 둔옹방(臀癰方), 내저방(內疽方), 폐옹방(肺癰方), 심옹방(心癰方), 간옹방(肝癰方), 신옹방(腎癰方), 위완옹방(胃脘癰方), 장옹방(腸癰方), 유경방(乳梗方), 내암방(嬭巖方), 변독방(便毒方), 나력방(瘰癧方) 권10 결핵방(結核方), 영류방(癭瘤方), 정종방(疔腫方), 낭옹방(囊癰方), 단독방(丹毒方), 은진방(癮疹方), 제악창방(諸惡瘡方), 제선방(諸癬方), 감창(疳瘡), 천포창(天疱瘡), 겸창(膁瘡), 동창(凍瘡), 두창(頭瘡), 열창(熱瘡), 이해창(頤頦瘡), 금사창(金絲瘡), 인면창(人面瘡), 칠창(漆瘡), 음식창(陰蝕瘡), 와창(蝸瘡), 반화창(反花瘡), 월식창(月蝕瘡), 누창(漏瘡), 전풍(癜風), 개창(疥瘡), 신장풍창(腎臟風瘡), 나풍문(癩風門), 파상풍문(破傷風門), 액기문(腋氣門), 염발방(染髮方), 괴질(怪疾) 권11 부인문(婦人門), 구사방(求嗣方), 태전문 상(胎前門 上) 권12 태전문 하(胎前門 下)‚ 산후문(産後門)‚ 소아문 상(小兒門 上) 권13 소아문 하(小兒門 下)‚ 두창(痘瘡), 잡방(雜方) 위의 병문 편제에서 드러나듯이 《의림촬요》는 부인과와 소아과까지 망라한 종합의서이다. 질병을 누락하지 않기 위하여 《의림촬요》에서는 유사한 내용을 연관되는 병문에 집중시켰다. 예를 들자면 중풍문에는 중풍(中風)과 흡사한 것들을 부록시키거나〔附類中風〕, 중풍 예방법을 함께 다루었다〔附預防中風〕. 이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림촬요속집》에 나온 내용을 포괄한 것인데, 《의림촬요》가 증보되면서 점차 정교해져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의림촬요》 본문에서는 인용하는 처방들의 출전을 명기하였다. 인용 도서들로는 고대 이래의 의서들도 망라되어 있지만, 특히 세 가지가 주목을 끈다. 첫째는 기존 연구에서 지적했듯이 《의림촬요》는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 유완소(劉完素)ㆍ장종정(張從正)ㆍ이고(李杲)ㆍ주진형(朱震亨))의 의학 이론, 다시 말하면 금(金)나라와 원(元)나라에서 이루어진 중국의학의 새로운 양상을 적극 수용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나아가 금원사대가의 이론을 매개로 《황제내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동의보감》에서 《황제내경》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는 역할을 하였다. 유완소ㆍ장종정ㆍ이고ㆍ주진형은 〈역대의학성씨〉에 모두 소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의림촬요》 본문에서 그들의 의학이 수시로 인용된다. 예를 들어 중풍문(中風門)의 병론에서는 “옛사람들의 중풍에 관한 주장을 살펴보면, 중풍 원인을 하간(河間 유완소(劉完素))은 화(火)라고 주장했고, 동원(東垣 이고(李杲))은 기(氣)라고 주장했으며, 단계(丹溪 주진형(朱震亨))는 습(濕)이라고 주장하였다.”라고 하였다. 《의림촬요》 전체로 보면, 특히 이고와 주진형이 자주 소개되고 있다. 둘째는 명(明)나라의 의서들이 《의림촬요》에 상당수 등장한다. 《의림촬요》의 인용 의서들을 저자 및 편찬 연도와 함께 살펴보면 《단계심법부여(丹溪心法附餘)》(방광, 1536년 간행), 《의가필용(醫家必用)》(윤춘년, 1544), 《명의잡저(明醫雜著》(왕륜, 1549년 간행), 《의학입문(醫學入門)》(이천, 1575년 간행), 《만병회춘(萬病回春)》(공정현, 1587년 편찬) 등이다. 양예수가 활동했던 시기의 중국 의서들이 상당수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의림촬요》가 최신 의학지식을 최대한 수용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의림촬요》의 인용 의서들을 살필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존하는 《의림촬요》 재간본과 삼간본은, 양예수가 직접 편찬한 《의림촬요》 초간본을 토대로 1608년에 별도로 간행된 《의림촬요속집》을 합본한 책이기 때문이다. 우선 양예수 자신도 《의림촬요》를 편찬할 때 《의가필용》이나 《명의잡저》 같은 최신 의서를 참고하였다. 하지만 《의림촬요속집》에서는 더 나아가 《단계심법부여(丹溪心法附餘)》, 《고금의감(古今醫鑑)》, 《의학입문(醫學入門)》, 《만병회춘(萬病回春)》을 집중적으로 소개하였다. 《단계심법부여》 등은 양예수가 편찬한 《의림촬요》 초간본에서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의서들이었다. 즉 《의림촬요》 증보 과정에서 최신 의서들이나 주진형 이론에 대한 조선 의학자들의 수용이 계속 진행된 것이다. 최신 의학지식에 대한 관심은 조선 의학자들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의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의방유취》 편찬을 통해 세상의 모든 의학을 통합 정리하고자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학 지식의 통합이란 외래 지식의 수용에 머무는 한은 결코 완성될 수 없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조선만의 의학을 체계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동의보감》의 편찬이 바로 중국의학과는 구별되는 조선만의 의법을 구성하려는 노력이었다. 셋째는 조선의 의서들이 《의림촬요》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려의 《제중입효방(濟衆立效方)》을 비롯하여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의서인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의방유취(醫方類聚)》는 《의림촬요》에서도 인용되고 있는데, 특히 《향약집성방》의 인용빈도가 높다. 그리고 양예수가 활동하던 시기와 그리 멀지 않은 조선 중종대의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과 《촌가구급방(村家救急方)》 역시 《의림촬요》에서 인용되고 있다. 심지어 양예수가 창제한 처방〔本國退思翁所製方〕도 《의림촬요》에 수록되어 있다. 중국 의서들보다는 인용 분량이 떨어지지만 《의림촬요》가 조선전기의 의학적 성취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5. 맺음말 본문에서는 우선 《의림촬요(醫林撮要)》의 저자인 양예수에 대해 살펴본 후 《의림촬요》의 간행 경과를 추적하였으며, 《의림촬요》의 편제와 특징을 다루었다. 이상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미한 출신인 양예수(?~1600)는 명종 4년(1549) 의과에 합격한 이래 당대를 대표하는 의관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명종과 선조의 신임 속에 왕실 의료를 담당하면서 관직 생활의 대부분을 내의원 의관으로 보냈다. 《의림촬요》는 정경선의 실무 작업을 토대로 양예수가 8권으로 편찬하였다. 선조의 명에 따라 조선의 풍토와 실정에 적합한 의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 의서를 《의림촬요》 초간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초간본은 현존하지도 않고 그 간행 시기도 명확하지 않지만, 1600년에 사망한 양예수의 생전에 내의원에서 간행되었을 것이다. 이어 1608년에는 《의림촬요》 초간본의 미진한 처방을 보완하여 《의림촬요속집(醫林撮要續集)》 2권 2책이 간행되었다. 편찬자는 알 수 없지만 이객과 이희헌이 감교(監校)하여 내의원에서 간행된 의서였다. 2권이 모두 현존하므로, 《의림촬요》의 증보 과정을 추적하는 데 유용하다. 그리고 허준 사후인 1615년에서 1635년 사이에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가 작성되었다. 이것은 《의학입문》의 〈역대의학성씨〉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중국 의학자 7명과 조선 의학자 2명(양예수와 허준)을 증보한 것이었다. 그 후 이괄의 난 등으로 《의림촬요》 초간본이 희소해졌다. 이 때문에 《의림촬요》 초간본과 《의림촬요속집》을 합본하면서 〈역대의학성씨〉를 책 앞부분에 덧붙인 증간본이 간행되었다. 인조 13년(1635)에 목활자로 간행된 《의림촬요》 13권본(《의림촬요》 재간본)과 숙종 2년(1676)에 금속활자(무신자)로 간행된 《의림촬요》 13권본(《의림촬요》 삼간본)이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의림촬요》는 삼간본이다. 《의림촬요》의 체재를 살펴보면 권1의 맨 처음에 〈역대의학성씨〉가 실려 있다. 그리고 중풍문(中風門)을 위시하여 부인문(婦人門)과 소아문(小兒門)에 이르는 종합의서의 체재를 갖추고 있다. 120개의 병문(病門)에서는 질병을 설명하는 병론(病論)을 맨 앞에 배치한 후 처방들→울법(熨法 찜질법)→구법(灸法 뜸법)을 차례로 설명하였으며, 식이요법〔食治〕과 금기 음식〔食忌〕까지 다루고 있다. 《의림촬요》에서는 다양한 의학지식을 활용하고 있는데, 그 인용 도서들의 특징으로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중국의학의 새로운 양상인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의 의학 이론을 적극 채용하고, 《의림촬요》가 편찬되던 무렵의 명(明)나라 의서들을 최대한 수용하며, 《향약집성방》이나 《의방유취》 같은 조선의 의서들이 지속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림촬요》가 최신 의학지식에 대한 깊은 관심을 유지하는 동시에 조선전기의 의학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1. 자료 《의림촬요(醫林撮要)》 《의림촬요속집(醫林撮要續集)》 《동의보감(東醫寶鑑)》 《내의선생안(內醫先生案)》 《명종실록(明宗實錄)》 《선조실록(宣祖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미암일기(眉巖日記)》 《존양재선생문집(存養齋先生文集)》 《어우야담(於于野談)》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동야휘집(東野彙集)》 《청주양씨대동보(淸州楊氏大同譜)》(청주양씨대종회(淸州楊氏大宗會), 1993) 한국역대인물종합시스템(http://people.aks.ac.kr) 2. 연구논저 강명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천년의 상상, 2014. 김두종(金斗鍾), 《한국의학사(韓國醫學史)》, 탐구당(探求堂), 1966. 김헌ㆍ김남일, 〈‘비(否)’ 괘(卦)의 활용을 중심으로 본 《의림촬요(醫林撮要)》 속의 역학사상(易學思想) -《의학정전(醫學正傳)》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의사학회지(韓國醫史學會誌)》 21권 1호, 2008. 김호,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 일지사, 2000. 김홍균(金洪均), 〈《의림촬요(醫林撮要)》와 《동의보감(東醫寶鑑)》의 비교고찰(比較考察) -요통(腰痛)을 중심으로-〉, 《한국의사학회지(韓國醫史學會誌)》 13권 1호, 2000. 김홍균(金洪均), 《《의림촬요(醫林撮要)》의 의사학적(醫史學的) 연구(硏究) -저자, 판본, 구성, 인용문헌 등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김홍균(金洪均),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의림촬요(醫林撮要)》의 비교고찰(比較考察)〉, 《한국의사학회지(韓國醫史學會誌)》 14권 2호, 2001. 김홍균(金洪均)ㆍ김남일(金南一), 〈의림촬요(醫林撮要)의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에 대하여〉, 《경희한의대논문집》 21권 1호, 1998. 김홍균ㆍ안상우,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의 침(針)과 침(鍼)에 대하여, 《한국의사학회지》 25권 2호, 2012. 성호준(成昊俊),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철학적 연구 -유학(儒學)과 도교(道敎) 사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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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1]이 시기의 …… 의림촬요(醫林撮要)이다 : 《의림촬요》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은 미키 사카에와 김두종에 의해 이루어졌다.(미키 사카에(三木榮), 《조선의서지(朝鮮醫書誌)》 증수판(增修版), 학술도서간행회(學術圖書刊行會), 1973, 83~86쪽, 352~353쪽; 김두종(金斗鍾), 《한국의학사(韓國醫學史)》, 탐구당(探求堂), 1966, 298~299쪽.) [주D-002]양예수(楊禮壽) …… 찬술하였다 : 《의림촬요(醫林撮要)》 권1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 본국명의(本國明醫). “楊禮壽〔字敬甫, 號退思翁, 弘農人. 以醫術聞於世, 撰醫林撮要八卷.〕” [주D-003]의림촬요(醫林撮要) …… 교정(校正)하였다 : 《동의보감(東醫寶鑑)》 권1 역대의방(歷代醫方)(남산당 영인, 1981). “醫林撮要〔本國內醫鄭敬先所撰, 楊禮壽校正.〕” [주D-004]양예수(楊禮壽) …… 퇴사옹(退思翁) : 《내의선생안(內醫先生案)》(허준박물관 소장). “楊禮壽〔敬甫〕. 弘農人〔資憲, 行同樞兼司僕將, 陽川縣令, 號退思翁〕.”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는 종2품 벼슬이다. 맡은 관직(官職)의 품계가 자신의 품계보다 낮은 경우에는 ‘행(行)’을 관직명 앞에 붙이고, 반대로 관직이 자신의 품계보다 높은 경우에는 ‘수(守)’를 관직명 앞에 붙인다. 이것을 행수법(行守法)이라고 한다. 양예수는 정2품 품계인 자헌대부(資憲大夫)로서 종2품 관직인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맡았으므로,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라고 표기한 것이다. [주D-005]양예수의 …… 같다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이나 《동야휘집(東野彙集)》에는 다리병〔脚病〕을 핑계로 권세 있는 집안의 왕진을 사양하던 의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임진왜란 발발로 피난하게 되자 이 의관이 잘 걷게 되었으므로 이항복이 다리병에는 난리탕(難離湯)이 최고라고 농담하여 사람을 웃겼다는 이야기이다. 이 의관의 이름을 《연려실기술》에서는 양예수라고 하고, 《동야휘집》에서는 허준이라고 하였다.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야사이므로, 본문에서 다루지는 않는다. [주D-006]명종 4년 …… 양건(楊建) : 이성무(李成茂)ㆍ최진옥(崔珍玉)ㆍ김희복(金喜福) 편(編), 《조선시대(朝鮮時代) 잡과합격자(雜科合格者) 총람(總覽) -잡과방목(雜科榜目)의 전산화(電算化)-》, 한국정신문화연구원(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0, 96쪽. 이 자료집은 현존하는 《의과방목(醫科榜目)》, 《의역주팔세보(醫譯籌八世譜)》, 《의과팔세보(醫科八世譜)》, 《의등제보(醫等第譜)》 등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주D-007]명종 18년 …… 치료 : 《명종실록》 권29, 명종 18년 9월 20일(을미). 이때 세자가 사망하여 양예수는 후에 비난을 받았다(《명종실록》 권30, 명종 19년 12월 21일(기축)). [주D-008]명종 19년 …… 승진 : 《명종실록》 권30, 명종 19년 12월 21일(기축). 신하들은 양예수의 승진을 반대하였다(《명종실록》 권30, 명종 19년 12월 22일(경인); 12월 24일(임진)). [주D-009]명종 20년 …… 주장 : 《명종실록》 권31, 명종 20년 4월 12일(무인). [주D-010]명종 20년 …… 가자(加資) : 《명종실록》 권31, 명종 20년 10월 9일(임신). [주D-011]명종 22년 …… 하옥 : 《명종실록》 권34, 명종 22년 6월 28일(신해). [주D-012]선조 3년 …… 치료 : 《미암일기(眉巖日記)》 1570~1573년. [주D-013]선조 11년 …… 상소 : 《선조실록》 권12, 선조 11년 7월 4일(계축). [주D-014]선조 13년 …… 가자 : 《선조실록》 권14, 선조 13년 11월 27일(계사). [주D-015]선조 18년 …… 표기 : 《만력 13년 을유 8월 24일 사마방목(萬曆 十三年 乙酉 八月 二十四日 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73〕, 한국역대인물종합시스템(http://people.aks.ac.kr), 2014년 10월 7일 접속). [주D-016]선조 19년 …… 가자 : 《선조실록》 권20, 선조 19년 10월 8일(기사). [주D-017]선조 20년 …… 하사 : 《선조실록》 권21, 선조 20년 12월 9일(계해). [주D-018]선조 28년 …… 하사 : 《선조실록》 권62, 선조 28년 4월 25일(정묘); 권64, 선조 28년 6월 11일(임자). [주D-019]선조 29년 …… 치료 : 《선조실록》 권75, 선조 29년 5월 11일(정축). [주D-020]선조 30년 …… 반대 : 《선조실록》 권84, 선조 30년 1월 16일(정미). 이때 양예수는 자헌대부(資憲大夫 정2품 하)로 승진한 것으로 추측된다. [주D-021]선조 30년 …… 치료 : 《선조실록》 권87, 선조 30년 4월 14일(갑술). [주D-022]선조 32년 …… 하사 : 《선조실록》 권115, 선조 32년 7월 24일(신미). [주D-023]선조 33년 …… 부의(賻儀) : 《선조실록》 권132, 선조 33년 12월 1일(경오). [주D-024]광해군 4년 …… 표기 : 《만력 40년 임자 3월 13일 사마방목(萬曆 四十年 壬子 三月 十三日 司馬榜目)》(고려대학교〔만송B8A1 1612A〕, 한국역대인물종합시스템(http://people.aks.ac.kr), 2014년 10월 7일 접속). [주D-025]젊은 …… 이야기다 : 유몽인, 신익철ㆍ이형대ㆍ조융희ㆍ노영미 옮김, 《어우야담 원문》, 돌베개, 2006. “楊禮壽, 昭敬大王朝太醫也.” [주D-026]양예수의 …… 있다 : 《미암일기(眉巖日記)》 1568년 10월 24일. [주D-027]부사(府使)이며 …… 갔다 : 청주양씨대종회(淸州楊氏大宗會), 《청주양씨대동보(淸州楊氏大同譜)》 권2, 1993, 특히 42~43쪽 참고. [주D-028]양지수는 …… 한다 : 《선조실록》 권132, 선조 33년 12월 1일(경오). [주D-029]양홍무는 …… 합격하였다 : 《만력 13년 을유 8월 24일 사마방목(萬曆 十三年 乙酉 八月 二十四日 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73〕). [주D-030]양홍도는 …… 합격하였다 : 《만력 40년 임자 3월 13일 사마방목(萬曆 四十年 壬子 三月 十三日 司馬榜目)》(고려대학교〔만송B8A1 1612A〕). [주D-031]기운이 …… 빠짐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인조 4년 4월 5일(국사편찬위원회 영인, 1961). “氣化遷變, 風土各異, 有宜於古, 而不宜於今, 可用於中原, 而不可用於東土者, 取其適用, 捨其乖宜者, 始可爲全書. 以是往在宣祖朝, 命故名醫臣楊禮壽, 撰醫林撮要, 此書一出, 非但議藥劑藥之際, 人甚便之〔七字缺〕者, 一展卷而得知對證之劑, 其爲廣惠〔五字缺〕.” [주D-032]정경선(鄭敬先) 내의원 정 : 《내의선생안(內醫先生案)》(허준박물관 소장). “鄭敬先〔正〕.” [주D-033]정경선은 …… 한다 : 김홍균(金洪均), 《《의림촬요(醫林撮要)》의 의사학적(醫史學的) 연구(硏究) -저자, 판본, 구성, 인용문헌 등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15쪽. [주D-034]의림촬요는 …… 인용되며 : 안상우,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유취(類聚)’ 인용문에 대한 고찰〉, 《한국의사학회지(韓國醫史學會誌)》 13권 1호, 2000. 《의림촬요》와 《동의보감》의 계승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이 참고된다.(김홍균, 〈《의림촬요(醫林撮要)》와 《동의보감(東醫寶鑑)》의 비교고찰(比較考察) -요통(腰痛)을 중심으로-〉, 《한국의사학회지(韓國醫史學會誌)》 13권 1호, 2000.) [주D-035]목활자(木活字)로 …… 2책이다 : 《의림촬요속집》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소개한 논문들이 있다(유희영(柳熙英), 〈의림촬요속집(醫林撮要續集)의 의사학적(醫史學的) 가치(價値)〉, 《동의병리학회지》 1집, 1984; 김홍균ㆍ안상우,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의 침(針)과 침(鍼)에 대하여, 《한국의사학회지》 25권 2호, 2012). 유희영의 논문에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의림촬요속집》 권2의 일부가 영인되어 있다. [주D-036]만력(萬曆) …… 있다 : 《의림촬요속집(醫林撮要續集)》 권2(국립중앙도서관 소장). “萬曆三十六年九月日, 內醫院開刊. 監校官, 通訓大夫行內醫院判官臣李, 監校官, 通訓大夫行內醫院主簿臣李希憲.” [주D-037]의림촬요속집과 …… 것이다 : 인용 의서와 처방의 순서가 일치하는 예를 하나 더 거론하자면, 《의림촬요속집》 온역문의 이성구고환(二聖救苦丸 《의감(醫鑑)》에서 인용) → 우방금련탕(牛蒡芩連湯 《회춘(回春)》에서 인용)의 기록이 《의림촬요》 삼간본에서 그대로 재인용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주D-038]양예수가 …… 것이다 : 《의림촬요》〈중풍문〉 삼간본에는 통관산(通關散)이라는 처방이 2건 보인다. 하나의 병문에 동일한 처방 2개가 배치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런데 2건 중 1건은 《의림촬요속집》의 통관산과 일치한다. 원래 양예수가 편찬한 《의림촬요》 초간본에 통관산 처방 1건이 있었는데, 《의림촬요속집》에서 별도로 통관산 처방 1건을 수록하였고, 나중에 《의림촬요》 삼간본에서는 이 2건의 처방이 한군데로 모이게 된 것이다. [주D-039]의림촬요속집 …… 另硏三字 : 《의림촬요속집(醫林撮要續集)》 권1 중풍문(中風門) 용성단(龍星丹). 원문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용성단(龍星丹). 여러 종류의 풍열(風熱)로 인해 담연(痰涎)이 가득 찬 것을 치료한다. …편뇌(片腦 별도로 간 것 3자(字))ㆍ우황(牛黃 별도로 간 것 3자)ㆍ사향(麝香 별도로 간 것 3자)….” [주D-040]의림촬요 …… 各三字 : 《의림촬요(醫林撮要)》 권1 중풍문(中風門) 용성단(龍星丹). 원문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용성단(龍星丹). 여러 종류의 풍열(風熱)로 인해 담연(痰涎)이 가득 찬 것을 치료한다. …편뇌(片腦)ㆍ우황(牛黃)ㆍ사향(麝香 모두 별도로 간 것, 각 3자(字))….” [주D-041]의림촬요속집의 …… 묶였다 : 또한 《의림촬요속집》 권2를 살펴보면 인후문(咽喉門), 혈증문(血證門), 뉵혈문(衄血門), 각혈문(咯血門), 익혈문(溺血門), 하혈문(下血門), 치루문(痔漏門), 자한문(自汗門), 임폐문(淋閉門), 관격문(關格門), 조결문(燥結門), 황달문(黃疸門), 상손문(傷損門), 창양문(瘡瘍門), 부인문(婦人門), 소아문(小兒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의림촬요》 원본의 병문 배치순서와 대체로 일치한다. 《의림촬요속집》의 병문에서는 병론이 생략된 채 처방들만 배치되어 있다. 즉 《의림촬요》 초간본에 추가되었으면 좋았을 처방들만을 뽑아 2권짜리 간략한 처방집으로 편찬한 것이 《의림촬요속집》이었다. [주D-042]의림촬요속집이 …… 만들어진다 : 《의림촬요》에 수록된 〈역대의학성씨〉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이 참고된다(김홍균(金洪均)ㆍ김남일(金南一), 〈의림촬요(醫林撮要)의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에 대하여〉, 《경희한의대논문집》 21권 1호, 1998). [주D-043]허준(許浚) …… 찬술하였다 : 《의림촬요(醫林撮要)》 권1 〈역대의학성씨(歷代醫學姓氏)〉. “許浚 字淸源…官至崇祿大夫陽平君, 贈領議政. 撰東醫寶鑑二十五卷ㆍ諺解痘瘡集一卷ㆍ諺解胎産集一卷ㆍ諺解救急方一卷ㆍ新纂辟瘟方一卷.” [주D-044]의림촬요 …… 나타났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인조 4년 4월 5일. “醫林撮要進上之外, 分置醫司, 流布外方, 而散失於賊适之變, 今者收聚外方分賜之冊, 而卷秩不具, 藥材兩〔一字缺〕取考之際, 未免奔走閭閻, 而鄕藥集成方, 則遼路〔二字缺〕之後, 方爲印出, 而反正之初, 多事停罷, 此一書, 皆列聖軫念民生, 非命夭札, 成此惠治之方, 不但爲內局, 〔一字缺〕用之地也. 其仁惠養育之盛意, 豈啻宋之刊行□劑而已哉? 今若依例使校書館印出, 則事未易就, 而徒費工匠料布, 今戶兵兩曹, 雖無所儲, 如得三四同綿布, 五十石大米, 則可以隨時低昂, 買賣取剩, 而更不煩該司, 令戶兵曹, 依此數上下, 俾得無弊印出, 何如? 傳曰, 知道. 詔使回還後爲之.” [주D-045]인조 …… 보고하였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인조 12년 10월 9일. “徐景雨啓曰, 內醫院官員, 以都提調言來言, 醫林撮要印出工匠料布, 以各衙門所儲, 隨力助給事. 入啓蒙允後, 八月初一日始役矣. 各衙門已爲輸送者, 都体府一同, 摠戎廳ㆍ常平廳一同, 司僕寺一同, 合四同而三朔料布, 分給已盡. 御營廳亦當送一同, 而時未送之, 計其功役, 來正月望間, 當爲完畢, 而料布更無出處, 極爲可慮. 每朔所用, 不過七十餘匹, 今後令該曹, 限數月題給, 何如云. 故敢啓. 傳曰, 依啓.”;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인조 13년 2월 22일. “醫林撮要則自內局印頒, 今才畢役.” [주D-046]인조의 …… 삼았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인조 24년 10월 28일. “都提調ㆍ提調ㆍ同副承旨臣南翧再啓曰,… 醫林撮要耳病門, 透耳筒, 治耳聾腎虛, 耳中如風水聲, 如鐘鼓聲.”;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현종 원년 2월 5일. “藥房三啓曰, 臣等退與鄭後啓等諸醫官, 更議進御之藥, 則皆以爲醫林撮要中, 加味菊花散, 治風熱, 內外諸般障目, 加羚羊殼七分, 蟬退五分以進, 最爲合宜, 羊肝丸兼進爲當云.” [주D-047]권1의 …… 추측된다 : 《의림촬요》의 권별 분량은 균등할 것으로 판단되는데, 〈역대의학성씨〉가 권1에 포함되어야 권별 분량이 일정해진다. [주D-048]국왕은 …… 하사하였다 : 안춘근(安春根), 《한국서지학원론(韓國書誌學原論)》, 범우사, 1990, 190쪽; 강명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천년의 상상, 2014, 341~343쪽 참고. [주D-049]강희(康熙) …… 있다 : 《의림촬요(醫林撮要)》(서울대 규장각 소장, 청구기호 古 7608-8). “康熙十五年十一月十九日, 內賜行副護軍□□□醫林撮要一件, 命除謝恩, 右承旨臣丁〔手決〕.” [주D-050]강희 …… 있다 : 《의림촬요(醫林撮要)》(대구가톨릭대도서관 소장, 청구기호 동519.8-양64ㅇ). “康熙十五年十一月十九日, 內賜吏曺佐郞李聃命醫林撮要一件, 命除謝恩, 右承旨臣丁〔手決〕.” [주D-051]숙종 …… 하사받았다 : 《존양재선생문집(存養齋先生文集)》 부록(附錄) 권1 연보(年譜)(《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속(續)》 권32, 민족문화추진회 영인, 2007). “丙辰〔先生六十五歲〕. … ○十一月呈病還鄕, 特賜醫林撮要一部.” [주D-052]의림촬요 …… 소장처 : 〈표2〉 외에도 한국국학진흥원에는 권수 미상의 《의림촬요》 5책이 소장되어 있으며, 《의림촬요》 필사본이 경북대와 원광대에 1책씩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의림촬요》의 해외 소장본, 필사본, 번역본 등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이 참고된다(안상우, 〈《의림촬요(醫林撮要)》의 판본(板本)과 최근 연구 성과〉, 《한국한의학연구원논문집》 10권 1호, 2004). [주D-053]서울대 규장각 : 서울대 규장각의 《의림촬요》 중 권10은 별도의 청구기호(奎古 645)로 소장되어 있다. [주D-054]이상에서 …… 같다 : 김홍균은 선조 초기에 이미 《의림촬요》 간행본이 있었고, 1589~1592년 사이에 정경선이 찬(撰)하고 양예수가 교정(校正)한 8권본이 발간되며, 1608년에 이락(李絡)과 이희헌(李希憲)이 찬(撰)한 《의림촬요속집》이 발간되고, 1777년(정조 원년) 무렵에 《의림촬요》 12권본이 발간되었다가, 1777년(정조 원년)~1782년(정조6) 사이에 《의림촬요》 13권본이 완성된다고 주장한다(김홍균, 《의림촬요(醫林撮要)》의 의사학적(醫史學的) 연구(硏究) -저자, 판본, 구성, 인용문헌 등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이에 대한 검토는 본문의 논의로 대신한다. [주D-055]중국 …… 것이었다 : 《의림촬요》〈역대의학성씨〉에 추가된 의학자들에 대해서는 김홍균, 《《의림촬요(醫林撮要)》의 의사학적(醫史學的) 연구(硏究) -저자, 판본, 구성, 인용문헌 등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76~77쪽 참고. [주D-056]중풍문(中風門)에서 …… 같다 : 《의림촬요》에는 병문마다 작은 글씨로 일련번호〔細註〕가 붙어 있는데, ‘중풍문 1’에서 ‘잡방 120’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주D-057]금원사대가의 …… 하였다 : 신순식(申舜植) 외, 《한국한의학사(韓國韓醫學史) 재정립(再定立)》 상하(上下), 한국한의학연구소, 1995, 249~260쪽; 김호,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 일지사, 2000, 118~121쪽; 성호준(成昊俊),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철학적 연구 -유학(儒學)과 도교(道敎) 사상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87~89쪽. 반면 《의림촬요》와 금원사대가 사이에는 깊은 영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김홍균(金洪均), 《《의림촬요(醫林撮要)》의 의사학적(醫史學的) 연구(硏究) -저자, 판본, 구성, 인용문헌 등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김헌ㆍ김남일, 〈‘비(否)’ 괘(卦)의 활용을 중심으로 본 《의림촬요(醫林撮要)》 속의 역학사상(易學思想) -《의학정전(醫學正傳)》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의사학회지(韓國醫史學會誌)》 21권 1호, 2008). [주D-058]옛사람들의 …… 하였다 : 《의림촬요(醫林撮要)》 권1 중풍문(中風門). “昔人主乎風, 河間主火, 東垣主氣, 丹溪主濕.” [주D-059]단계심법부여(丹溪心法附餘) …… 소개하였다 : 물론 《의림촬요속집》에서는 《득효방》이나 《화제국방》 등의 처방들도 인용한다. 《의림촬요속집》이 양예수가 편찬한 《의림촬요》에서 누락한 처방들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주D-060]동의보감의 …… 노력이었다 : 이경록, 〈조선전기 《의방유취》의 성취와 한계 -‘상한’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한국과학사학회지》 34권 3호, 2012 참고. [주D-061]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 높다 : 《의림촬요》와 《향약집성방》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이 참고된다(김홍균,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의림촬요(醫林撮要)》의 비교고찰(比較考察)〉, 《한국의사학회지(韓國醫史學會誌)》 14권 2호, 2001).

2017년 3월 8일 수요일

침으로 손목관절터널증후군 개선

침으로 손목터널증후군 통증 개선, 국제학술지에 게재

한의학硏·하버드의대 연구팀, fMRI·DTI통해 뇌과학적 기전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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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공동연구진이 한의학 치료기술인 침 치료가 손목터널후군 환자의 말초신경 중 하나인 정중신경 전도속도를 향상시키고 뇌 구조를 변화시켜 통증을 개선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혔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이하 한의학연)은 해당 연구가 세계적인 뇌영상 및 의료 영상 분야 연구기관인 미국 하버드의대 마르티노스 바이오메디컬 이미징 센터 비탈리 내퍼도(Vitaly Napadow) 교수팀과 공동으로 미국에서 진행됐으며, 신경학 분야 권위지 브레인(Brain, IF 10.1)의 온라인판에 게재됐다고 9일 밝혔다.

한의학연에 따르면 임상연구부 김형준 박사와 미국 하버드의대 공동연구팀은 79명의 손목터널증후군(수근관증후군, Carpal Tunnel Syndrome) 환자를 대상으로 56명은 진짜 침(verum acupuncture) 치료군에, 23명은 가짜 침(sham acupuncture) 치료군에 배정했다.

진짜 침 치료군은 다시 통증부위인 손목에 주로 침을 맞는 아픈 곳과 그 주위에 자침하는 ‘근위침(local acupuncture) 치료군’과 아픈 손목의 반대편 발목에 침을 맞는 ‘원위침(distal acupuncture) 치료군’으로 나눠 연구를 진행했다.

8주간 16회의 침과 전기침 치료를 실시했으며 치료 전후로 신경전도검사를 통해 정중신경 전도속도(잠복기)를 측정하고 ‘보스턴 손목터널증후군 설문(BCTQ)’으로 통증 경감도를 조사했다. 또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와 DTI(확산텐서영상) 촬영을 통해 뇌의 기능적구조적 변화를 측정했다.

진짜침의 근위침 치료군의 경우 아픈 손목의 대릉(PC7), 외관(TE5)에 2 Hz 전침을 20분간 시행하고 수삼리(LI10), 양계(LI5), 척택(LU5), 소해(HT3), 곡택(PC3), 완골(SI4) 중 3개의 경혈을 환자에 맞게 선택해 자침했다.

원위침 치료군은 아픈 손목의 반대편 발에 자침하였는데, 중봉(LR4), 삼음교(SP6)에 2 Hz 전침을 20분간 시행하고, 양릉천(GB34), 태계(KI3), 상구(SP5)에 자침했다.

반면 가짜침 치료군은 가짜침(Streitberger needle)으로 손, 발의 가짜 혈자리 피부에 자극을 주고 가짜 전침기에 연결해 전기자극을 했다.

정중신경 전도검사 결과 진짜침은 감각신경 잠복기를 평균 0.16millisecond(근위침 0.16 ms, 원위침 0.17 ms) 감소시켰으나, 가짜침은 오히려 0.12 ms 증가시켰다. 즉,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인해 느려졌던 신경전도속도가 진짜침 시술 후에만 개선됨을 확인했다.

이어서 fMRI를 이용해 정중신경이 지나가는 검지, 중지를 자극했을 때 뇌의 일차감각피질에서 가장 활성화되는 영역의 꼭짓점간거리(검지-중지 거리)를 측정했다. 손목터널증후군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검지-중지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이 기존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측정결과 진짜 침 치료 후에는 줄었던 검지-중지 거리가 평균 1.8 mm(근위침 2.3 mm, 원위침 1.3 mm) 증가한데 반해, 가짜침 치료 후에는 평균 0.1 mm 감소할 뿐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DTI(Diffusion Tensor Imaging, 확산텐서영상)를 이용해 손목터널증후군 환자의 뇌백질(white matter) 구조를 살펴 본 결과 진짜침 치료 후에는 신경전도속도가 개선됨에 따라 아픈 손에 해당하는 뇌백질의 구조 이상이 일부 회복되는 등 구조적 변화가 관찰됐으나, 가짜침 치료 후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임상시험 참자를 대상으로 통증 자각증상 평가인 보스턴 손목터널증후군 설문조사(BCTQ) 결과, 8주간의 침 치료 직후에는 진짜침과 가짜침 치료군 환자 모두 통증이 경감됐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치료 3개월 후 진짜침 치료군은 증상 평가 점수가 25.1% 감소해 치료효과가 유지된데 반해, 가짜침은 증상 평가 점수가 11.1% 하락해 효과가 유지되지 않았다.

공동연구팀은 한의학 치료의 기전을 뇌영상 기법으로 규명하기 위해 후속연구(보건복지부 한의국제협력연구)를 기획중이며 요통, 경항통, 편두통, 섬유근육통 등 다빈도 통증 치료기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다.

논문 공동 1저자인 김형준 한의학연 박사는 “침이 임상적으로 진통효과를 보인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기존에는 환자들의 주관적인 보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침의 효과를 객관적인 지표로 보여주기가 어려웠다”며 “이번 연구는 진짜침만이 정중신경 전도도를 변화시키고, 또 뇌 일차감각영역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MRI를 통해 최초로 밝혀낸 것”이라고 말했다.

비탈리 미국 하버드의대 교수는 “침은 안전하고 부작용이 적은 통증 치료법으로 이 연구는 침이 신경조절작용을 통하여 뇌의 감각영역에 변화를 가져오고 치료효과를 나타내는 기전을 증명했다”라고 이번 연구 성과의 의미를 밝혔다.

이혜정 한의학연 원장은 “이번 성과로 한의약 치료기술의 우수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며 “한의학연은 앞으로도 세계 우수 연구기관과 융복합 연구를 통해 국민들이 한의약 치료기술을 신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손목을 자주 사용하는 주부뿐만 아니라 장시간 컴퓨터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는 사무직 종사자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손목터널증후군은 손목을 이루는 뼈와 인대들로 이뤄진 작은 통로인 수근관이 두꺼워지거나 수근관 내 압력이 높아져 정중신경을 압박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손가락과 손목이 저리고 아프며, 정중신경 전도속도가 늦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진료 받은 환자는 16만 7125명이며 이중 여성 환자가 77.7%로 남성 환자 보다 약 3.5배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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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신경마비 구안와사 와사풍

구안와사, 안면신경마비 "눈 못 감고, 입 못 벌려.."

사진=방송 캡처이미지 크게 보기

사진=방송 캡처

'구안와사'는 입과 눈 주변의 근육이 마비돼 한쪽으로 비뚤어지는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다.

구안와사에 걸리면 눈을 감거나 입 꼬리를 올리는 등 얼굴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구안와사는 노년층․몸이 허약한 산모에게 자주 발병했지만 최근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장인들과 청소년들에게 상당수 발병하고 있다. 과도한 육체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심신이 허약해진 상태에 과로까지 겹친다면 안면신경마비로 발전한 가능성이 높다.

한편 건강보험심사평가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한의원과 한방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구안와사 환자는 약 12만 명에 달한다. 이는 2010년(약 6만1천 명)에 비해 무려 95% 가량 증가한 수치이다.

 박민희 기자 (mhee@etnews.com)

봄철 건강관리

[대구시한의사회의 한의학 칼럼] 나른한 봄철 건강관리


<대구시한의사회 홍보이사 정여진> 

한의학은 자연의 변화에 인체가 밀접하게 반응한다고 본다. 봄기운을 받아 생기가 돌면서, 우리 몸의 피부나 혈관, 근골격계 등이 사기(邪氣)를 밀어내며 다양한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평소 건강한 사람은 외부 기후의 큰 변화에도 무던하게 잘 적응한다. 반면 기력이 약한 사람은 봄이 되면 인체의 적응능력을 초과하거나, 변화에 대한 조절기능을 잃어버리면서, 입맛이 없고, 나른해지기도 하고, 머리가 띵하게 두통이 생기는 등의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때문에 봄철에는 보온에 신경 쓰면서 충분한 휴식과 담백한 영양 섭취, 적당한 운동과 기분 전환 같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봄이 되면 활동량이 늘고 기운이 바깥으로 펼쳐지다 보니 소화시키는 데 쓸 수 있는 에너지량이 상대적으로 줄면서 평소보다 음식을 소화시키기 힘들어져 입맛이 없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에는 신맛 나는 냉이, 쑥, 달래, 씀바귀, 고들빼기, 미나리, 부추 등 겨우내 부족한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봄나물을 먹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입맛이 시원치 않으면 이때는 인체의 소화기능 등이 정도 이상으로 약해진 비기허(脾氣虛)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가까운 한의원에서 상담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봄철에는 또 춘곤증으로 인해 머리가 멍해지고 심지어 힘이 쭉 빠지면서 자꾸 눕고 싶을 때가 있다. 기운이 부족할 때는 과식과 차가운 음식을 피하고 배를 따뜻하게 하면서 소화되기 좋은 형태로 조리해서 먹어야 한다. 보통 기운이 없다면 육류나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경우가 있는데, 이보단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한 봄나물이나 쑥국, 냉잇국 등을 먹는 것이 낫다.

요즘 같은 학기 초에는 육체적·정신적으로 피로함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 소위 신학기 증후군은 학기 초 환경변화에서 오는 긴장과 스트레스에 봄철이라는 시간적 특수성이 결합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려고 하면 자꾸 배나 머리가 아파오는 것도 흔히 보이는 증상이다.

일부는 불안감과 긴장감이 심해지면서 틱 증상이 시작되거나 악화되기도 한다. 이때는 먼저 정서적 안정을 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증상이 일시적이거나 가벼운 경우 충분한 휴식과 영양 공급에 규칙적인 생활, 스트레칭이나 체조 또는 가벼운 산책을 꾸준히 하면 도움이 된다. 

봄철 피로감은 계절변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적응과정이다. 업무량이나 활동량이 늘어난다거나 더 신경 쓸 일이 생겨서 피로감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피로는 간염, 결핵, 당뇨, 빈혈, 갑상선 기능 항진증 등 각종 대사장애 질환의 경우에도 나타나기 때문에 영양개선과 충분한 휴식에도 피로증상이 일주일 이상 지속된다면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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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 수요일

코피 고혈압 중풍 신호

고혈압환자에게 ‘코피’는 중풍위험신호

코피는 흔히 경험하는 증상 중 하나다. 코를 심하게 후비거나 비염이 있어도 쉽게 코피가 난다. 공부를 좀 한다는 학생의 학창시절 코피는 훈장처럼 여겨졌다. 코피는 어릴 적 친구와 주먹다툼을 할 때도 승패를 결정짓는 주된 판가름이었다. 하지만 결코 무심히 넘길 수 없는 코피가 있다. 바로 고혈압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코피다.

코피의 원인은 코 점막 안에 있는 혈관파열이다. 코 점막에는 크고 작은 혈관과 모세혈관이 모여 있다. 특히 코를 양쪽으로 구분하는 물렁뼈 부위와 콧볼 부위에는 아래, 위, 뒤에서 모여든 혈관이 자잘하게 연결돼 있다. 이 부위를 키셀바흐(Kisselbach)영역 혹은 little’s area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쉽게 출혈이 일어난다.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코피의 가장 흔한 원인은 코를 후비는 것이다. 잠을 자면서도 무의식중에 코를 후비는 아이들이 많다. 비염이나 부비동염(축농증)이 있어도 코를 많이 만지게 된다. 비염에 사용하는 스프레이제제도 코 점막을 약화시켜 출혈을 유발한다. 건조한 날씨, 종양이나 응고장애, 약물 등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체질적으로 보면 열감을 많이 느끼고 상기가 되는 경우 코피가 잦다. 한의학에서는 이 경우를 ‘혈열망행(血熱妄行)한다’고 했다. 혈액의 기운이 뜨거워 미친 듯이 날뛴다는 말이다. 고열이나 만성피로에 의한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

중요한 것은 코피는 혈관 내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터진다는 점이다. 코에 분포돼 있는 작은 혈관들은 압력을 조절하는 밸브역할을 한다. 안구혈관도 비슷하다. 코나 안구의 혈관이 뇌혈관보다 탄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만일 기계적인 압력이 없었는데도 코피가 자주 나는 성인의 경우 뇌혈관이 터질 수도 있다. 고혈압과 함께 뇌동맥류기형이 있다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필자를 방문한 환자 중 코피가 잦고 출혈량이 많은 사람이 있었다. 환자는 평소 혈압이 높다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병원에 올 당시 160/100mmHg로 무척 높았다. 이는 중풍을 경험한 것과 같은 상황으로 결국 코피가 중풍을 예방해 준 것이다. 고혈압환자의 코피는 억지로 지혈시키지 말고 저절로 멎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잘못된 지혈법 중 하나는 고개를 뒤로 지나치게 젖히는 것이다. 이 방법은 지혈에 도움이 안 될 뿐더러 응고된 혈액이 기도를 막을 수 있고 혈액이 열린 기도로 흘러들어가 흡입성폐렴을 유발할 수도 있다.

코피가 나면 눕지 말고 앉아 있는 것이 좋은데 코를 심장보다 높게 유지해야 지혈이 쉽다. 턱은 살짝 들어주는 정도로 해서 코피를 앞으로 흘러나오게 한다. 이런 상태로 5~10분이면 대부분 저절로 지혈이 된다.

만일 코피의 양이 많거나 자연적인 지혈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거즈 등으로 가볍게 막거나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눌러도 좋다. 뒷덜미를 얼음팩으로 시원하게 해주면 대부분 지혈된다. 10분 정도 지나도 지혈이 안 되거나 반복되는 경우는 병원을 찾아야한다.

인터넷을 보면 코피가 났을 때 가운데 손가락 첫째마디에 고무줄을 묶으면 바로 지혈이 된다는 내용이 있다. 수지침에서 해당 부위가 사람의 두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들고 있다. 첫째마디 부분은 목에 해당하는데 그곳에 고무줄을 감는다고 경동맥이 압박받는 느낌은 없다. 이 방법은 정확한 임상적인 연구결과가 없는 플라시보로 여겨진다.

코피는 간혹 심각한 질환을 예견하는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 특히 고혈압환자가 혈압조절이 잘 안 되면서 코피가 자주 난다면 철저한 혈압관리와 함께 반드시 뇌혈관검사를 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고혈압 환자에게 코피는 중풍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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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감기 특징

민족의학신문 소아 감기의 특징과 섭생법 이진용(경희대 한방소아과) ■ 소아감기의 특징 소아는 氣血이 충실치 못하고 肌膚가 연약하여 寒熱의 조절기능이 미약한데다가 風寒에 感觸되어 邪氣가 理로 들어가 營衛를 상하게 한다. 이러한 소아 감기의 임상적인 특징은 寒證이 熱證으로 잘 변하므로 즉 갑자기 고열을 나타내며 고열로 인해 驚風을 잘 일으킨다. 그리고 食滯로 인해서 구토, 설사 등 위장증상을 잘 일으킨다. ■ 증상에 따라 치료 소아감기는 임상적으로 크게 風寒感冒와 風熱感冒로 구분되는데 流行性 感冒는 風熱感冒의 重證으로 보면 된다. 風寒感冒는 비교적 나이가 든 연장아에서 많이 나타나며 發熱하고 차가운 것을 싫어하며 無汗, 鼻流淸涕 등의 특징을 가지는데 解表祛邪, 辛溫散寒 시켜주는 治法을 사용한다. 이에 비해 風熱感冒는 비교적 나이가 어린 영유아에 많으며 대개 발열이 심해 고열이 나타나고 汗出하여도 解熱되지 않고 鼻塞流黃涕하여 疏散表邪, 兼淸裏熱하는 치법을 사용한다. 감기의 증상에 따르면 그 주된 증상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高熱型은 고열이 나는데 흔히 편도선염 등 인후부위의 염증일 경우가 많다. 荊防敗毒散, 凉膈散, 人蔘羌活湯, 仙防敗毒湯 등을 加減하여 사용한다. 胃腸型은 주로 위장장애를 초래하는 경우로써 藿香正氣散, 不換金正氣散, 香葛湯, 正理湯, 陶氏平胃散 등을 加減使用하고 만약 寒熱往來가 있으면 柴胡 黃芩을 더 加한다. 痙攣型은 자주 놀라며 경련을 일으키는 경우로 편도선염이 아니면 甲己湯에 靑皮, 釣鉤藤, 白강蠶, 木瓜, 天麻, 蟬세, 葛根, 忍冬, 蘇葉, 麥芽, 陳皮를 加하여 쓰며 抱龍丸이나 牛黃抱龍丸을 兼服시킨다. 咳嗽型은 기침감기라고도 하는데 발열하는 경우는 敗毒散에 黃芩, 荊芥, 防風, 杏仁, 桑白皮, 玄參 등을 加하며, 고열이 있으면 柴梗半夏湯에 仙防敗毒湯을 합하여 사용한다. 별로 열이 없으면 養胃湯에 蔘蘇飮을 합하여 사용하고, 痰이 있으면 金銀花, 蒲公英, 紫원, 款冬花를 加하여 쓴다. 喘息咳嗽가 열을 동반하면 麻杏甘石湯, 仙防敗毒湯을 쓰며 열이 없으면 解表兩陳湯을 쓰고, 안면부위에 부종을 겸하면 小靑龍湯을 가감사용한다. 류머티스형은 몸살감기로 肢節痛이 대표적인 증상인 경우로 열이 있으며 소화기능에 이상이 없으면 雙敗湯, 九味羌活湯 合 葛根解肌湯을 쓰고 소화장애가 있으면 雙金湯을 쓰고, 몸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으며 손끝 발끝까지 통증이 있으면 交加散을 쓰는 것이 좋다. ■ 섭생 및 예방 소아 감기의 일반적 주의사항은 안정이 필요한데 감기의 원인적인 치료가 없는 것을 고려할 때 안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치료라고 생각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한방처방으로 荊防敗毒散이 독감의 치료 및 예방에 효과가 있다. 정리 = 김승진 기자

보약 어떻게 좋은가

[한방으로 잡는 건강] 보약

[한방으로 잡는 건강] 보약
“보약 먹고 여러 증상들이 좋아졌어요.” 대부분의 임상 한의사들이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한의학적 치료의 장점 중 하나는 인체의 불균형을 찾아 해결하면 다양한 증상들이 함께 호전된다는 점이다. 한의사는 보약을 원해 병원을 찾은 환자라도 진맥뿐만 아니라 식욕과 소화, 대소변, 수면, 월경 등 여러 증상을 진찰해 최종 처방을 내린다. 이렇게 처방된 보약은 체력 향상과 면역 증진은 물론 세부적인 증상 치료에도 영향을 미친다.

20여 년 전만 해도 민간에서 보약으로 알려진 특정 처방을 요구하거나 자신에게 맞는지 문의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요즘에는 한방 진료에 대한 의식 수준이 높아져 보약도 한의사의 진료를 통해 본인의 체질과 증상에 맞게 처방받는 게 일반화돼 있다.

몸에 특별한 병이 없고 식사를 잘한다면 굳이 보약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거나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 몸의 생리적 변화가 있는 경우에는 보약으로 몸의 기능 회복을 도울 수 있다.

팔방미인인 보약의 매력이 더욱 빛나는 증상들도 있다. 우선 보약은 만성피로증후군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낸다. 또 자각 증상이 심한데도 검사 상에는 이상이 없는 각종 신경성 증상에도 효과를 보인다. 주로 신경성 소화불량이나 위장염, 과민성 대장증후군, 과민성 방광, 신경성 두통 등이 해당된다. 각종 수술 후 회복과 출산 또는 유산 후, 골절 등 스포츠 손상 등에도 큰 도움이 된다. 보약이 인체 조직의 회복 기전에 복합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대사증후군 등 만성질환과 각종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지속적인 양방치료와 관리를 받고 있는 경우에도 보약은 체력과 면역력을 높여 악화를 예방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다. 입시나 취업, 승진 시험 등을 준비하는 수험생의 체력 보완에도 도움이 된다. 허약한 어린아이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쇠약한 노인들의 체력을 보충하는 버팀목 역할도 한다.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결혼이나 임신 준비를 하는 경우, 장기간 해외 연수나 해외 여행 등의 일정이 예정돼 있다면 체력 보강을 위해 보약을 먹어두면 좋다. 원인을 알기 힘든 각종 알레르기성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 특히 면역력과 관련이 깊은 알레르기성 비염과 알레르기 천식, 알레르기성 피부염 등의 치료에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특정 질환으로 오랫동안 여러 병`의원을 전전하며 다양한 치료를 받았을 때 이런 환자들은 오랜 치료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보약을 먹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보약은 흐트러진 인체 내 균형을 바로잡고 기능적인 부족함을 채워준다. 몸이 지치고 약해져 다양한 증상으로 고통을 겪을 때 자신에게 꼭 맞는 보약은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줄 수 있다.

빅데이터 분석

민족의학신문

 
 
 
Ⅰ. 임상증거편(전회에 이어) 

15) 뇌신경외과 

이 보고서에는 본래 뇌신경외과에서 맨처음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뇌혈관장애, 그 후유증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 질환은 순환기영역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이 영역의 전체 논문수는 31 보고이고, 이 가운데 이중맹검 랜덤화비교시험 2 보고, 비교시험 14 보고였다. 
각 주제를 일람하면 고령화사회의 일본에서 기대되는 한방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1. 뇌혈관성 치매 
고령의 치매환자는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더욱 증가될 전망이다. 항치매작용 있다고 추정되는 當歸芍藥散과 釣藤散이 이미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추천 : 치매의 약 반수를 차지한다고 하는 뇌혈관성치매에 대해서 釣藤散은 개선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근거: 15시설의 139예의 뇌혈관성치매에 대해서 이중맹검비교시험을 실시했다. 釣藤散은 8주 및 12주에서의 전반개선도에서 우수한 개선증상을 나타냈다. 또한 자각증상에서는 전반개선도에 있어서 8주, 12주에서 유의차가 있었다. 정신의학적징후에서는 전반개선도에서 4주, 8주, 12주의 모든 과정에서 개선되었다. 自發會話. 표정, 계산능력, 야간섬망, 불면, 환각증상 등이 개선되었다. 12주가 되는 시점에서 일상생활동작의 개선도 유의차가 있었다. 8주에는 옷을 입고 벗는 동작에도 유의차가 인정되었다. (표1 참조) 

釣藤散은 뇌경색이외에도 뇌 순환부전에 기인하는 고령자의 여러 증상개선에 효과가 있다. 

근거: 5시설의 22예를 랜덤으로 조등산투여군과 dilazep dihydrochloride투여군으로 배당하여 12주간 투여하였다. 그 결과 두통, 두중, 어깨결림, 불안초조, 현기증에서 유의하게 조등산이 우수한 효과를 나타냈다. (표2 참조) 

16) 치과·구강외과 

치과·구강외과에서의 논문수는 25보고이고, 이 중에서 비교시험은 15보고이다. 

1. 타액분비장애(쇼그렌 증후군에 의함) 
쇼그렌증후군의 타액분비장애에는 2001년에 서양약으로서 무스카린수용체 작동약이 적용되게 되었다. 한방약에서는 맥문동탕과 白虎加人蔘湯 등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근거: 72예의 쇼그렌증후군을 麥門冬湯群과 補中益氣湯群의 2군으로 나누어서 4주간 투여하고, 이어서 처방을 서로 변경해서 4주간 투여하였다. 이 사이에 gum test로 타액분비량을 측정했다. 이 결과 麥門冬湯은 補中益氣湯보다 타액분비량을 유의하게 증가시킨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표3 참조) 

2. 발치후 동통 
치아를 뽑은 후의 동통관리에는 非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가 적용된다. 그러나 위궤양과 아스피린천식 예에서는 立效散이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 

근거 : 50증례에서 치아를 뽑은 후에 立效散을 사용했을 때 보통 치아를 뽑은 후의 동통이 경도라고 예상되는 경우에는 충분한 진통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렵게 치아를 뽑은 후에는 동통이 중등도이상이라고 예상되는 경우에는 충분한 진통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결과를 얻었다. (표4 참조) 

3. 舌痛症 
舌痛症은 심신증적인 요소가 있으면서 치료가 어려운 질환이나 한방치료에 대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柴朴湯은 이와 같은 경우에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 

근거: 104예의 舌痛症을 무작위로 柴朴湯투여군과 diazepam + 비타민 B투여군으로 나누어서 3개월간 투여한 다음, 그 경과를 검토분석하였다. 柴朴湯투여군이 임상효과(p<0.05), 부작용발현(p<0.001), 자각증상(p<0.01) 등에서 모두 뛰어난 효과를 나타내었다. (표 생략) 

17) 안과 

1. 淚液분비 감소증(안구건조증) 
淚液분비 감소증은 오늘날의 안과질환이다. 누액분비는 쇼그렌 증후군 이 이외에는 그 원인이 분명하지 않다. 무스카린 수용체 작동약이 임상응용 될 가능성이 있는 한편, 기존의 약제로서는 麥門冬湯 等의 한방약도 사용되고 있다. 

근거 1: 60명의 원인불명의 안구건조증에 대해서 人蔘養榮湯과 점안약군, 점안약단독의 2군으로 나누어서 12주간 이상 연속투여한 결과, 타각소견의 유의한 개선증상을 인정했다. (표5 참조) 

근거 2: 11예의 淚液분비감소증에 대해서 맥문동탕을 1-6개월 복용했을 때, 자타각 소견상 유의한 개선을 인정했다. (표 생략) 

3. 포도막염 
포도막염은 여러 난치병 가운데 안과영역에서의 합병증이고,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가 적용된다. 이들의 약물감량을 목적으로 柴령湯이 병용되는 경우가 있다. 

근거: 베체트병, 原田病, sarcoidosis, 病型분류불능의 포도막염에 대해서 시령탕을 투여하였을 때 베체트병에서는 발작회수가 감소하였으며, 原田病에서는 재발이 없이 스테로이드의 이탈이 가능하였다. 또한 경증의 포도막염에도 효과가 있었다. (표생략) 

4. 黃斑浮腫 
시령탕은 또한 황반부종에도 적용된다. 

근거: 황반부종으로 진단된 68예 91眼에 대해서 시령탕을 투여하고, 檢안경과 細隙燈현미경을 사용하여 경과를 관찰하였다. 시령탕은 前增殖性 당뇨병 망막증과 망막정맥 폐색증에서 유의하게 개선되었고, 또한 망막부종은 前增殖性 당뇨병 망막증에서도 개선되었다. (표 생략) 

5. 기타 
기타 안과질환 중에서도 한방치료의 적용이 되는 것은 적지않다. 

근거: 오늘날 노동환경인 VDT작업자는 시력저하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와 같은 38예를 조절마비 점안제단독군과 점안제에  영桂朮甘湯내복을 병용한 두군으로 나누어 경과를 관찰하였을 때 영계출감탕 병용군은 조절마비제 점안제단독보다도 치료전 裸眼시력이 0.3에서 0.6정도로의 裸眼시력과 완전교정굴절도의 개선에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표 생략) 

18) 방사선과 

서양의학 분야 중 방사선과영역에서는 비교적 오래전 부터 한방진료의 역사가 있었다. 전체 논문수는 6편이며, 이 중에서 비교시험은 5보고가 집적되었다. 

1. 악성종양의 방사선치료시 부작용과 한방 
요즈음 방사선치료의 부작용 중 하나인 백혈구감소에 대해서 한방약이 효과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임상현장에서는 실제로 다수의 예에서 한방약이 적용되고 있지만, 질환이 악성종양인만큼 신뢰할만한 임상연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추천 : 人蔘養榮湯은 방사선치료를 할 때 백혈구감소를 경감시킬 가능성이 있다 

근거: 전국의 22시설이 참가해서 126예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이다. 

인삼양영탕의 투여·비투여의 두군에 있어서 환자배경에는 차이가 없었다. 자각증상 개선도, 임상검사소견 개선도(백혈구수), 주치의 판단에 의한 전반개선도의 모든 항목에 있어서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證別전반ㄷ개선도에서는 투여군에서 인삼양영탕의 證으로서 식욕부진, 피로권태감 등의 자각증상이 있는 사람을 <人蔘養榮湯의 證>이라고 생각하여 검토한 바, 투여군에서는 人蔘養榮湯증이라고 판단된 군에서는 유효이상이 50%, 인삼양영탕의 證이 아니라고 판단된 군에서는 39%이었다. 반면에 인삼양영탕의 非투여군에서는 人蔘養榮湯證이라고 판단된 군의 유효수가 12.5%, 人蔘養榮湯증이라고 판단되지 않았던 군의 유효수는 30.0%였다는 사실이 한방관점에서 주목된다.(역자주 : 즉 人蔘養榮湯 투여군에서도 인삼양영탕의 證을 가진 사람에게 좋은 효과가 있으며, 인삼양영탕 비투여군에서는 人蔘養榮湯證이었던 사람의 유효수가 적었다.) (표생략) 

19) 항문과 

항문과는 한방치료와 인연이 깊다. 오늘날에 있어서 친숙한 紫雲膏도 乙字湯도 에도시대에 고안해 낸 치질용의 일본의 경험방이다. 이 영역에서는 6편의 연구보고가 있으며, 4개가 비교시험이다. 

1. 裂肛·치질 
裂肛은 항문괄약근이 심하게 긴장되어 있을때, 딱딱한 변의 배설에 의해 항문상피가 찢어져 출혈과 함께 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질환이다. 이와같은 통증은 배변에 대한 공포감을 자아내어 배변을 거부하게 만드는 결과, 대변은 더 딱딱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芍藥甘草湯이 이와같은 상태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근거 1: 100명의 裂肛환자를 치료법에 의해 2군으로 나누었다. 즉 연고만의 단독군과 연고 + 芍藥甘草湯군의 두군으로 나누어 시험되었다. 그 결과 환자만족도, 전반개선도, 유용도는 芍藥甘草湯군에서 높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치질에 자주 적용되어 효과가 뛰어난 것이 乙字湯이다. 乙字湯은 에도시대의 의학자 原南陽이 고안해 낸 한방약이다. (표6 참조) 

근거 2: 11시설이 참가하여 98예를 대상으로 실시된 임상연구이다. 일부러 inactive placebo의 좌약제(역자주 : 증상이 심할 때에 환자가 임의로 다른 치료약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치료약이 들어가 있지 않은 좌약을 환자에게 주어 사용하게 하였다)를 사용해서 될 수 있는 한 乙字湯만의 효과를 판정하고자 고안해 내는 등 매우 고심한 연구디자인을 구축한 점은 대조군을 두지않는 시험이지만, 그 결과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경과관찰도 자세하게 이루어져 신뢰성은 높다. (표7 참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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