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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4일 토요일

한약 보험 시범사업자료

[COVER STORY]한 달 남은 첩약급여사업, 갈수록 五里霧中[250호]

약사 한약사 참여 놓고 한의계 내홍 격화, 복지부는 눈치만 
한약조제약사 ‘시장 확대 기대’, 일부선 ‘적용 기준 신중해야’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이 표류 중이다. 당초 올해 10월에 시작될 예정이었던 시범사업은 직능 간 갈등으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있는 상태. 한의협 집행부와 첩약 건강보험사업 TFT 간 내홍에 약사와 한약사들의 의견까지 엉켜 좀처럼 실타래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피해를 입는 쪽은 국민들이다. 국민의 건강권과 알권리를 위해 야심차게 출발한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직능 이기주의에 밀려 제대로 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면 국민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올해 10월부터 3년간 시범사업 예정
첩약 건강보험에 대한 논의는 지난해 10월25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위원장 이영찬, 이하 건정심) 회의에서 ‘치료용 첩약의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한시적 시범사업’과 ‘고운맘카드(임신·출산 지원사업)의 한방의료기관 확대 적용’ 등을 의결함으로써 시작됐다. 

이에 따라 올해 10월부터 한방 보장성 강화차원에서 3년 간 한시적으로 여성, 노인질환 치료용 첩약에 대한 급여 적용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번 시범사업에는 매년 2000억 원씩 3년간 6000억 원의 재정이 투입된다. 시범사업을 거쳐 그 결과를 모니터링 해 추후 확대여부를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올해 첩약 의료보험 혜택을 포함해 의료보험 보장 강화 등을 명목으로 건강보험료를 1.6% 인상했다. 제대로 시범사업이 실시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혜택도 누리지 못한 채 보험료만 더 내게 된다.

한약조제약사 ‘약국 한약 활성화 기대’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이 실시되면 약국에서는 조제가 가능한 초제(100처방) 중 일부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해진다. 

100처방은 한약처방의 종류 및 조제방법에 관한 규정에 의해 한의사 처방전 없이도 한약사나 한약조제약사에게 조제를 허용한 100종의 한약을 말한다.

한약조제지침서상 한약사 및 한약조제약사의 조제 범위를 100처방으로 한정한 것은 지난 1993년 3월 ‘한약조제권’을 둘러싼 한의사와 약사간의 한약분쟁이 원인이었다.

당시 한의사회, 약사회, 시민단체 및 정부 등이 참여한 ‘약사법개정추진위원회’가 한약사제도를 도입하고 한약취급약사 중 한약조제약사시험에 합격한 한약조제약사와 한약사에게 한의사 처방전 없이 한약을 임의로 처방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한 것이다.

97학번 이전 약사들만 한약조제자격증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약사들은 이번 시범사업에 대체적으로 약국 한약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비교적 고가에 판매되던 한약의 가격이 내려가면 소비자들도 큰 부담 없이 약국 한약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경기도 A 약사는 “한약은 질병에 따라 처방할 수 있는 약의 종류가 다양하다”며 “정부가 발표한 일부 치료제에 대다수 약들이 적용 가능하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약국 한약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험적용 대상 계층인 노인·여성의 근골격계질환·수족냉증 등의 경우 약국에서 취급하는 100처방 내 해당되는 품목이 적지 않다.

노인성 질환에 해당되는 근골격계질환의 경우 100처방 내 ▲구미강활탕 ▲오적산 ▲강활유풍탕 ▲독활기생탕 ▲계지작약지모탕 ▲육미지황환 등이 적용 가능하다.

또 여성질환에 해당하는 수족냉증에는 ▲당귀작약산 ▲당귀사역가오수유생강탕 ▲오적산 ▲보중익기탕 ▲사물탕 ▲귀비탕 ▲쌍화탕 ▲십전대보탕 ▲온경탕 ▲당귀수산 ▲조경종옥탕 등이 해당된다는 설명이다.

한의계 ‘내 밥그릇 뺏기지 않겠다’  
시범사업의 걸림돌은 한의계의 직능 이기주의다. 한의사들이 한약조제약사와 한약사 참여에 내부적으로 합의를 보지 못하면서 사실상 복지부도 시범사업에서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10월 정부의 시범사업 발표 후 김정곤 한의협 회장은 “건정심의 이번 결정으로 국민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양질의 한방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적극 참여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평회원들은 싸늘했다. 일부에서는 한의사 단독처방을 주장하면서 회관 점거 농성을 비롯해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대한한의사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김정곤 합의협 회장을 퇴진 시키고 올해 7월에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TFT 위원회(위원장 임장신)를 조직해 전면 반대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 8월1일부터는 일부 시도한의사회장과 TFT를 중심으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2일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가 한약조제약사와 한약사를 배제하고 오는 10월부터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한의계의 대표단체인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이 한의계의 합의된 안건을 가져오지 않는 한 재검토는 있을 수 없다며 합의 수준도 시범사업의 전제조건이었던 한약사와 약사(한약조제약사)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다.

의료계 ‘의약품 선택분업 실시하라’
의료계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정책 발표 직후 성명서를 통해 “건정심에서 한약 처방에 200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여하기로 한 결정에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한약 처방 2000억 투여와 함께 고운맘 카드 사용 예산 500억원을 추가하면, 신규보장성 강화 예산 3800억원 중 65%를 한방에 쏟아 붓는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전국의사총연합회(공동대표 이주병, 김성원, 강대식) 역시 이번 시범사업을 ‘의약분업 원칙 파기’라고 주장하며 ‘한약 선택분업과 함께 직능 간 공평성 차원에서 의약품의 선택분업 시범사업도 즉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대약 점진적 한방 완전분업 추진
대한약사회(회장 조찬휘, 이하 대약)는 한방의 완전분업 형태를 주장하고 있다.

한의사회의 내홍이 격렬해지던 지난해 11월 당시 김 구 집행부는 한방분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약은 성명서를 통해 “100처방 범위에서 한약조제약사의 조제가 제도화돼 있음에도 그 동안 일언반구도 없다가 보험급여 시범사업이 결정되자 약사의 조제행위를 문제 삼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행위”라고 지적하며 “한약조제 자격을 가진 약사의 첩약 급여를 반대하려면 한의협은 즉각 한방분업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찬휘 집행부 역시 한의협의 단식 농성 돌입 직후 성명서를 통해 “한의계는 직역 이기주의를 버리고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한방분업 실시에 앞장서라”며 “첩약 보험급여 시범사업은 한의약 전문직능인이 함께 참여하고, 한방분업 도입시점의 명문화가 전제될 때 실시 가능하다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현재 대한약사회는 한방 의약분업에 대비해 한방을 연수교육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전문 강사 양성을 위해 2주간 12시간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약대 6년제 과정을 이수중인 학생들은 한약제제학을 전공필수과목으로 배우고 있으며 한약제제 약물실습도 실시 중이다.

박찬두 대한약사회 한약위원장은 “한방의 완전분업을 원칙으로 하되 한시적으로 한약제제에 대해 임의 분업 형태로 출발하자”며 “국민 건강 차원에서도 한의사 처방은 공개돼야 하며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투명한 한방 분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여 적용 품목 정확한 기준 선행돼야
약사사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한약 급여 품목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세워지지 않으면 향후 한약 관련 정책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기도 L 약사는 “한약제제는 산지별, 기후별로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보험 적용 제제를 선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한방 완전분업을 한다고 해도 부피가 큰 한약의 특성상 약국에서 모든 제제를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한약제제는 병충해에 취약해 냉장시설을 별도로 갖추고 꾸준하게 관리해야 하는데 일반 약국에서 이와 같은 투자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서울의 K 약사 역시 “첩약 급여 적용이 약국한약을 취급하는 약사들에게는 희소식이 되겠지만 한약을 취급할 수 없는 이후 세대와는 격차가 벌어져 약사회 내부 분열을 조장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무엇보다 국민건강증진이 먼저
일부 세력은 급여 적용에 밥그릇 쟁탈전만 벌이고 있지만 대다수의 한약조제약사들은 한약 활성화를 통한 국민건강증진이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죽어 있는 한약 시장을 살려야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부 한의사들이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 한 결과 소비자들은 대부분 양약시장으로 몰려들었고 한약 시장이 쇠락하면서 한약조제약사와 한약사들도 함께 침체기를 겪고 있다.

서울 J 약사는 “그동안 한의사들이 다른 직능에 시장을 내주지 않은 결과 약국 한약을 비롯해 한약국 모두 침체된 지 오래다.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약국이나 한약국을 활성화 시켜 파이를 키워야 하는데 아직도 빼앗기지 않으면 모두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약과 양약 혹은 직능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이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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